[란코프 칼럼] ‘리설주 등장’은 김정은의 실책?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왼쪽)이 지난 7월26일 부인 리설주와 함께 평양에 개장한 릉라 인민유원지를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사진=신화사/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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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평양을 지켜보는 세계의 시선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초부터 대부분의 공식적인 행사에 김정은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 젊은 여성의 정체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북한 언론은 이 여성이 ‘리설주’이며,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의 부인이라는 사실을 외부 세계에 알렸다. 리설주는 그녀의 남편 다음으로 북한 언론에 자주 소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인물이다. 그는 서구의 인기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유치원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습으로, 심지어 평양동물원에서 어린 물개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북한 전문가들은 과거의 북한 관행에 비춰 이는 주목할만한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수십년간 북한의 지도자들은 부인을 대중에 보여주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의 할아버지이자 김씨 왕조를 만든 김일성은 적어도 2번 결혼했다. 첫 번째 부인은 북한 언론에 따르면 신과 같은 지위를 누렸다고 한다. 실제 이런 관점에서 김일성은 공산국가들이 해왔던 기존 전통을 따랐다. 최고지도자의 부인이나 가족 등 가까운 구성원들은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다.

이들이 대중에 모습을 보이는 것은 대개 외교행사에서 서구 고관들을 집으로 초대할 때이거나, 해외 순방에 비공식적으로 대동하는 경우 등이다.

유고슬라비아의 요세프 티토나 루마니아의 니콜라이 차우세스쿠 같은 예외도 있다. 차우세스쿠 는 부인 에네라와 함께 가족독재로 통치했다. 다른 예외는 마오쩌둥의 부인 중 한명이자 중국 공산당 문화공작 고문이기도 했던 강청(Jiang Qing)이다. 그녀는 레닌의 부인 크룹스카야처럼 부부자격이 아니라 그녀의 공식 직함 자격으로 참석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시절에도 북한은 매우 폐쇄적인 사회였다. 1949년 김일성의 첫 부인 김정숙이 사망한 뒤 북한 언론에서 김일성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부인이 언급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김성애는 1970년대 이후 대중집회에 몇 차례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강청처럼 퍼스트 레이디로서가 아니라 북한여성연맹의 회장 자격이었다.

김성애의 공적 등장과 정치적 활동은 정치적 야망, 특히 그의 아들 중 한 명을 남편의 후계자로 만들려는 열망과 연계된 것이었다. 그 야망은 이뤄지지 않았고, 1970년대 말까지 김성애는 대중의 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때부터 김일성은 전통적인 공산국가들의 행태를 따랐다. 간혹 부인 김성애가 특별한 행사 때마다 남편 옆에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김정일은 더 폐쇄적인 인물이었다. 김정일은 여성편력으로도 유명한데 동거하던 여성 중 2~3명은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연인 중 누구도 대중에 노출된 적은 없었다. 2000년 6월 한국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이희호 여사와 함께 평양에 왔을 때도 김정일 옆에 대동한 여성은 없었다. 지난 몇 년간 김정일의 마지막 부인이자 연인이랄 수 있는 김옥은 간혹 김정일 주변에 있었지만 김옥은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로서 외교행사에 참석한 적이 전혀 없고 단지 김정일의 보조자로서만 동석했을 뿐이다.

부인을 대중의 이목에서 감추려는 이런 행동들은 서구 언론에게는 공산국가 독재자들의 타고난 폐쇄성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스탈린 정권의 관점에서 이러한 태도는 완벽한 것이다. 스탈린 정권에서 최고 지도자는 지혜로운 동시에 인간의 문제와 걱정도 잘 아는 지적인 슈퍼인간으로 나타나야 한다. 스탈린 시대 이후 동유럽과 소비에트연방의 1960~1990년대 공적 무대에서 부인들이 안 나타나는 것은 여전히 표준이었다.

1980년대 중반 고르바초프 부인 라이사가 나타났을 때 소비에트 대중들이 그다지 주목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다. 라이사 고르바초프의 공식무대 등장이 개방과 자유화의 상징으로 서구사회에 비춰졌을 때 소비에트 사람들은 단지 그녀가 정부 수반과 같은 침대를 쓴다고 해서 공적 무대에서 특별한 특권이 주어져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서구인에게는 라이사 고르바초프의 등장이 특별한 족벌주의로 이해됐고, 그래서 라이사의 등장은 남편 고르바초프의 권위를 더욱 손상시키는 것이 되고 말았다.

이런 여파 때문일까, 잇따른 러시아 대통령들의 부인들, 즉 보리스 옐친과 블라디미르 푸틴, 그리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부인들은 모두 러시아에서 대중에 나타나지 않았다. 주요 러시아 고관들은 부인들이 미국 퍼스트 레이디가 대중의 관심을 받는 관례들을 따라한다면 자신의 명성에 나쁠 거라고 결론 내린 것 같다.

사실 김정은 부인의 경우도 다를 바가 없다. 북한의 새 젊은 지도자가 아름다운 배우자를 경모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받은 교육이 그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물론 북한 독재자 부인의 등장은 국제사회에서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북한 지도자가 군부대 시찰이나 수뇌부 담소에서 산뜻하게 차려입은 여성과 동행하는 모습을 북한 주민들이 즐거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북한은 어차피 주민들이 지도자의 개인적 사생활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갇힐 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억압적인 곳이다.

그래서 공적 행사에 부인 리설주를 대동하는 김정은 행보는 대표적인 실책이 될 지도 모른다. 그의 최근 행동을 보면 북한이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보낸 10대 시절 경험 때문에 외관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일 수도 있다.

김정은은 빈곤하고 잔인하게 보였던 북한 사회를 현대 선진사회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다. 이런 열망은 칭찬받을 만하지만, 부인을 서구 팝음악과 함께 세상의 이목을 끌도록 등장시키는 일이 올바른 선택은 아닌 것 같다. 경제개혁이 훨씬 더 중요하다. 김정은이 제때 이를 실현하길 바란다.

번역 여홍일 기자 news@theasian.asia

*원문은 아시아엔(The AsiaN) 영문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www.theasian.asia/?p=27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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