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김정은 방러, 소련-러시아 ‘다름’ 이해해야 결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비슷한 동작으로 총기류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총기류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사진=캐나다 네셔널 포스트 웹사이트/뉴시스>

[아시아엔=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5월 러시아를 방문한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의 이번 방러는 매우 이례적이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이 ‘첫 해외 방문국’으로 러시아를 선택한 이유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김정은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러시아와 서방의 갈등을 기회 삼아, 러시아의 원조와 투자를 받으려고 할 것이다. 섣부른 기대이나, 이번 순방이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열려 있다.

세계언론들은 중국, 러시아를 ‘북한의 동맹국’이라고 언급하지만 ‘동맹국가’라는 표현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1990년대초부터 러시아의 대북 원조와 교역량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반면 중국과의 무역은 20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고, 지난해 북-중 교역량은 65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교역량은 1억달러로, 중국의 60분의 1수준이다.

이같은 무역불균형의 원인은 간단하다. 러시아와 북한은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는 경제구조가 아니다. 북한의 주력 수출품은 러시아 기업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하고, 북한도 러시아 상품을 살 돈도 없을 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도 러시아 상품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북한은 주로 석탄과 같은 광물자원, 해산물 등을 수출하지만 러시아에겐 매력적인 상품이 아니다. 광활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엔 더 유용한 자원들이 매장돼 있으며, 북한산 해산물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북한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는 ‘값 싼 노동력’이다. 하지만 러시아 기업들은 러시아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중앙아시아 구소련 국가 출신 노동력을 더욱 선호한다. 때문에 북한이 러시아에 노동력을 수출하기엔 한계가 있다.

물론 러시아가 북한을 통해 남한에 진출하려는 야심을 가질 수도 있다. 북한을 넘어 남한까지 선로를 확장한다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사업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근 20년간 시베리아 횡단철도 논의가 오갔지만, 실제로 진전된 사항은 거의 없다. 러시아 기업들은 외교,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에 큰 돈을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다. 국제분쟁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쟁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투자자들은 발을 뺄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사태 북한에 호재?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상황이 바뀌었다. 서방국과 충돌하고 있는 러시아를 두고 세계언론들은 ‘소련’이 부활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불러올 수 있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반가운 일이다.

1960년대초부터 80년대 말까지 북한은 당시 최대지원국이자 라이벌이었던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능수능란한 외교를 펼쳐 두 국가의 원조를 누렸다. 이는 북한의 국부 김일성이 펼친 최고의 외교전략이었다. 김일성의 손자 김정은이 조부의 성공사례를 따르려 함은 당연지사다.

최근 불거진 북한과 중국 사이 긴장감이 높아진 것도 중요한 계기가 됐다. 북한 수뇌부는 중국의 내정간섭을 원치 않는다. 우방국을 택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저울질 하는 것은 이치에 맞는 판단이다. 특히 러시아가 ‘반서방정책’을 표방하고 있을 시기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북한수뇌부는 러시아를 ‘소련의 재림’이라 묘사하는 서방의 보도를 낙관해선 안된다. 러시아와 소련은 명백히 다르다. 소련의 외교전략은 ‘돈’을 필요로 했다. 소련은 반서방국가 및 반중국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세계 각국에 큰 돈을 투자했다. 이는 단순한 투자가 아니었다. 지난 20년동안 ‘소련’이라 불렸던 나라 상당수는 러시아의 원조를 받았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폭락한 가운데 한 시민이 러시아 세인트피터즈버그의 한 환율교환소 전광판을 지나가고 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폭락한 가운데 한 시민이 러시아 세인트피터즈버그의 한 환율교환소 전광판을 지나가고 있다.<사진=AP/뉴시스>

그러나 오늘날 러시아는 더 이상 소련이 아니다. 러시아에 외교는 ‘돈을 쓰는 정책’이 아니라 ‘돈을 버는 수단’이다. 특히 루블화 폭락으로 경제가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외교로 돈을 벌려 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북한외교관들도 러시아인들이 ‘비즈니스’를 위해 외교를 한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단기간에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만 관심 가질 가능성이 높다. 과거 냉전시대처럼 일방적인 원조나 러시아가 손해 보는 투자는 없을 것이다.

물론 성공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들도 있다. 러시안산 석탄을 남한이나 북한 나선항을 통해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다. 이는 실현가능한 시나리오지만 여러 장애물들을 넘어서야만 성공할 수 있다. 러시아는 더 이상 다른 국가에 무상원조를 하는 나라가 아니다. 북한이 단순히 원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닌,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자 한다면 러시아도 북한을 존중해줄 것이다.

이는 수십년간 동맹국들로부터 정치적 요인에 의한 투자(혹은 투자를 가장한 원조)를 받아왔던 북한권력층엔 비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변화를 따라잡고 이해한다면 북한이 현대사회의 경제구조를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번역 최정아 기자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