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제비’였던 한 탈북 청년의 고달픈 ‘한국 정착기’


*아래 기사는 23일 이주배경지원재단 출범식에서 만난 한 탈북청년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입니다.

<탈북 청년 이성주씨의 한국 정착기>?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있었다”

북에서 내려온 청소년들이 향후 통일한국의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고들 말하죠.

어떻게요?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몰라서 고통스러운데요. 정서적으로 불안해 죽겠는데요. 의지할 부모는 없고, 남한 문화는 낯설고, 공부는 어렵고, 경쟁은 해야 한다는데 자신은 없고.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런 특수한 환경까지 겹쳐 힘듭니다. ‘내가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생각에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배고팠던 기억이요? 남한에서 며칠 지내는 동안 다 잊게 되더라고요. 외로움, 끝없는 외로움이 배고픔보다 고통스러웠어요. 우리에겐 무엇보다 정서적인 안정이 첫째입니다. 저의 경험상 탈북청소년에게 정서적 안정은 정말 중요한 정착지원입니다. 가족처럼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 다음은 정체성 문제입니다. 탈북청소년들은 크게 두 가지의 정체성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경험이 적은 청소년들은 자신을 북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중국에서 태어났거나 중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은 자신을 북한인과 중국인의 중간쯤으로 여기죠.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에 오니 이들은 다시 대한민국 국민으로 불립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통일한국을 준비하는데 탈북청소년들의 올바른 정체성 확립은 중요한 과제입니다. 통일의 가교역할을 하고 못하고는 이들이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는가에 달렸습니다. 북한을 계속해서 거부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겠어요? 탈북청소년들이 통일의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이들에게 남한과 북한을 모두 아우르는 넓고 열린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 합니다. 이들에게 북한을 거부하는 마음이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주변 친구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한국이 좋아, 북한이 좋아?”였습니다. 지금은 “네가 북한 사람이니?”라는 질문입니다. 이제 저한테는 남북이 따로 없습니다. 모두 소중한 제 조국입니다.

국내 정착한 탈북학생은 초등학생 1204명, 중학생 351명, 고등학생 437명 총 1992명이다. 이들은 남한사회 적응을 위해 한시적으로 대안학교를 다닌다. 사진은 서울?여명학교 개교기념식에 참석한 탈북청소년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여명학교는 탈북청소년 대상 대안학교로 2004년 개교, 2010년 3월 최초로 학력인정 대안학교로 교과부인가를 받았다.

12살 때부터 꽃제비 생활… 17살 때 한국?와

저에 대한 소개가 늦었네요. 고향은 함경북도 경성입니다. 2003년, 17살 때 한국에 와 지금은 서강대에서 정치외교와 신문방송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12살 때 북에서 모든 것을 잃고 꽃제비가 됐습니다. 아버지는 식량을 구하러 중국으로, 3개월 후 어머니는 먹을 것을 찾아 집을 나갔습니다. 부모와 집을 잃은 저는 4년간 친구들과 꽃제비(먹고 잘 곳이 없어 떼지어 떠돌아다니면서 구걸하거나 소매치기를 하는 20세 이하 청소년들 지칭) 생활을 했습니다.

도둑질과 싸움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장마당은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한 전투장이고 기차역은 잠을 자기 위한 참호였습니다. 북한은 포성없는 전쟁터였습니다.

2003년 2월 한국에 와 중학교 1학년에 배정됐습니다. 친구들은 세 살 어렸지만 저보다 공부도 잘했고, 키도 컸습니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 북한에서 온 것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사귈 수 없었습니다. 공통분모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기초지식이 부족해 학교 진도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이런 불안 속에서 북한에서 태어난 것을 원망했고 북한을 저주했습니다. 북한이 저를 바보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제 삶이 바뀐 것은 한 멘토를 만나면서부터입니다. 교회 누나였는데 그의 도움으로 중학교 졸업검정고시에 합격했고, 19살의 나이로 부산에 있는 지구촌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함께 공부했던 선교사 자녀들도 저처럼 혼란을 겪는 아이들이었습니다. 함께 아픔을 공유하며 저의 상처도 치유됐고 삶의 이유도 찾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북한은 저주의 땅이 아닙니다. 남한도 감사의 땅입니다. 올해 졸업반인데 계속해서 통일외교 분야의 공부를 해 나갈 것입니다.

남한 사회에 온 탈북청소년들은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고, 끈질기게 버티며 견디어 온 사람들입니다. 최악을 겪어본 사람들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들의 잠재력을 믿고 많이 보듬어 주십시오.

아,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탈북청소년을 다문화란 카테고리에 넣는데, 친구들이 많이 혼란스러워 합니다. 물론 이질적인 문화에서 오긴 했지만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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