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김정은과 보리스 옐친
북한은 갑작스럽게 새로운 지도자를 맞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평양의 위정자들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각자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과연 이 새로운 실력자가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노심초사하면서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 예측을 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아래 두 가지를 염두에 두면 좋을 것이다.
첫째,?사실에 입각한 특별한 증거 없이 우리는 예측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김정은의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
둘째, 당분간 김정은은 독재를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김정은의 우상화 작업이 바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앞으로 몇 달 동안, 아니면 몇 년 동안 김정은은 명목상 리더로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건 아버지 김정일을 모셨던 노회한 가신들이지 김정은이 아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럴 것이다.
언젠가 김정은이 직접 그가 원하는 대로 권력을 행사할 날이 오겠지만 우리는 그 날을 어떻게 대비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간단히 말해 김정은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시장지향적인 개혁을 단행하거나 안 하거나.
중국식 개혁이 위험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그러므로 김정은이 그의 자리를 오래도록 지켜내길 원한다면, 할 수 있는 한 선친의 정책 패키지를 고집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궁극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음표다.
한편으로는 젊은 김정은이 개혁 노선을 택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김정일의 경우 1959년에 소련을 한 번 방문했던 것이 젊은 시절 해외 경험의 전부이지만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니며?10대 시절을 외국에서 보냈다. 그는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안다. 그리고 아마도 현재의 북한 시스템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또한 컴퓨터광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해 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다. 컴퓨터광이라고 해서 꼭 개혁자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리란 법은 없지만 그럴 수도 있는?암시는 충분히 된다.
최근에는 이같은 예측에 힘을 실어주는 일도 있었다. 김정일의 공식 애도기간이 끝나기 전인 12월 25일, 김정은은 시장 재개장 명령을 내렸는데 이같은 명령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이 시장에서 상행위를 통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상황에서 장사를 금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불만을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정일이 사망한 지 바로 며칠 지나지 않아 김정은이 이같은 명령을 내렸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김정은이 강경노선을 선택할 것이라는 우려섞인 예측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있는데 구스탈린 체제 때의 산업관리시스템을 부흥시키기 위해 단행했으나 실패로 돌아간 2009년 화폐 개혁의 책임이 김정은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북-중 국경지대에서 묵인됐던 개구멍들이 다 봉쇄되는 양상이다. 그리고 국경 경비가 부쩍 삼엄해졌으며 북한과 중국을 오가던 교통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국경 경비대원에게 수 십 달러만 쥐어주면 국경을 넘을 수 있었는데-어쩌다 운이 좋으면 공짜로도 국경을 넘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수 백 달러 수준으로 뇌물의 액수가 크게 뛰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이같은 현상 뒤에 김정은이 있다고 믿고 있다.
걱정되는 징조가 한 가지 더 있는데, 북한에 남겨진 탈북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압박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북한 경찰은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 실종자가 있는 집을 탐문 조사하고 있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탈북한 사실이 밝혀지면 산간벽지로 추방되는데 경찰에게 뇌물을 줘서 추방되지 않는 방법도 있지만 갖다 바쳐야 하는 뇌물이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다. 한 사람의 탈북자도 나와서는 안 된다는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다고 북한 경찰들은 말하고 있다.
김정은이 그의 조부인 김일성처럼 옷을 입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서양에서 ‘마오쩌둥 옷’이라고 부르는 그의 옷은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와?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로 이 옷을 입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옷은 바로 김일성이 입었던 옷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옷 스타일도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나쁜 징조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은 ‘현재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원래 정치라는 것이 리더의 개인적 신념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상황이 더 복잡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어떤 사람이 정치적으로 성공하려 한다면 본인의 신념을 빨리 그리고 자주 벗어 던질 줄 알아야 한다. 구 소련 말기에 반공산주의 운동의 선봉에 선 보리스 옐친이 한때는 레닌의 열렬한 신봉자였었다는 것을 누가 기억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