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북한 주민들 이제 ‘세뇌된 로봇’이 아니다

1987년 무렵, 북한의 <노동신문>(그 시절 소련에선 이 신문 구독료가 매우 쌌다)에서 북한기자가 쓴 ‘아프리카 여행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작은 배를 타고 도착한 한 시골학교에서 아이들이 아주 중요한 수업을 듣고 있었다고 썼다. 그건 바로 ‘김일성 일대기’였다.

신문기사 중에는 남한사람들이 ‘제국주의의 멍에’ 속에서 고통받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기사는 “남한주민 8백만명(당시 고용가능인구의 약 35%)이 실업상태”라고 썼다. 그런데, 이 기사가 노동신문에 실리던 당시는 ‘한강의 기적’ 덕분에 한국의 실업률이 2%도 채 되지 않았다.

또 다른 기사는 남한여성 중 1/4이 강제로 미군에게 몸을 파는 매춘부라고 했다. 18세에서 45세의 여성만 따진다고 해도, 300만~400만명이 미군상대 매춘부라는 것이다. 당시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4만명의 미군을 접대하기에는 많은 숫자가 아닌가? 미군 1명당 100명의 매춘부가 있다는 얘기니 말이다.

사실 기지촌에서 일어나는 성매매가 문제시되고 있지만 관련 여성은 아무리 많게 잡아도 북한 주장과 달리 1만명을 넘은 적이 없었다.

노동신문의 이런 기사들을 북한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프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서 널리 존경받고 있다고 믿을까? 주한 미군 1인당 한국 매춘부 10여명이 상시 대기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이 물음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부족하나마 각종 자료와 역대정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토대로 추측해볼 수는 있다. 1960년대 초 한국은 끔찍하게 가난했다. 1960년대 말 소수의 제3세계 독재자와 서구 좌파사상가들은 북한 공산주의체제를 자신들의 모델로 받아들인 바 있다. 따라서 노동신문의 이런 보도들을 북한 주민들도 그대로 믿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달라지고 신문의 신뢰도는 점점 떨어져갔다.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약속했던 경제적 번영은 이뤄지지 않았고, 1975년에 이르러선 이미 좋은 편이 아니었던 생활수준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북한 당국은 해외뉴스가 북한내에 유입되는 걸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했다. 심지어 당 선전부의 실수도 눈에 띄었다. 예를 들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영상이 북한에 공개됐을 때, 북한 주민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난에 찌들어 산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남한사람들이 별로 마르지도 않았고, 잘 차려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을 전후해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북한주민들이 북중 국경을 넘어다녔고, 정부의 통제가 약해진 반면 부패는 극심해졌다. 특히 DVD 플레이어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북한주민들이 ‘조국’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은 급격하게 바뀌었다.

우리 상식으로 판단컨대, 당국의 선전이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북한 주민은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의 선전이 모두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다. 주민들은 당국의 선전이 거짓이거나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얼마나 과장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사정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은 북한주민 누구나 갖고 있다. 그렇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벌어졌는지는 모르고 있다. 그들은 김정은 일가족의 리더십을 반신반의 하면서도 이 나라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부정부패는 김정은 일가가 아니라 썩은 관리들 탓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북한 주민들은 미국에 대해서는 뼛속까지 적대적이면서 핵무기 개발에 대해선 자부심이 무척 크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겪고 있는 가난이나 위기의식 등이 외국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북한에서 이데올로기와 선전선동의 영향력은 아직 강하게 남아있지만, 주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세뇌된 로봇이 아니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당국의 선전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을 뿐이다. 북한주민들은 앞으로 그 같은 정보를 점점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다.

번역 민족사관고등학교 이진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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