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북한 배급체계 ‘붕괴’ 이후
경제에 관한 한 북한은 매우 특이하다. 김일성 시대 북한은 스탈린주의 경제학의 표본으로 알려졌다. 1960~90년대 북한의 국영 소매상점은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북한주민들은 정부가 발행한 쿠폰을 교환해 식량을 얻었다. 이를 위해 북한정부는 매년 주민들이 어느 만큼의 생필품을 필요로 하는지 산출했고, 이를 토대로 주민들에 배급했다.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들을 무료로 지급받을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우선 북한의 분배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배급이다. 식량배급량은 전국적으로 균일했다. 1960년대 성인은 하루 700그램의 쌀 또는 다른 곡물을 지급받았고 1972년부터 총 배급량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1인 배급규모는 연령과 직업에 따라 달랐다. 전술했듯이 대다수 노동자들은 하루 700그램의 곡물을 배급 받았고 더 고된 노동을 하는 이들은 900그램까지 배급 받을 자격을 얻었다. 반면 가정주부들은 단 300그램만 배급받았고 10대 학생들은 이보다 더 적은 양을 배급받았다. 쌀의 배급비율은 장소에 따라 달랐다. 1960년대 평양에서 식량배급 중 절반은 쌀로 지급됐고, 교외 주민들에 쌀은 오직 휴일에만 배급됐다.
북한의 분배시스템에서 식량 다음으로 중요한 배급품은 간장, 된장, 어류 등과 같이 곡물을 제외한 식량과 생필품이었다. 이 물품들의 배급량은 지역의 장이 중앙으로부터 지원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달랐다. 특정 지역주민들은 신발을 한 켤레 얻는 반면, 다른 지역 주민들은 같은 신발을 세 켤레 얻는 경우도 발생했다. 3순위 배급품은 주민 감시집단을 통해 배포됐다. 이들은 일반주민들이 접하기 힘든 유명 식당 이용권 등을 배급했다. 북한의 복잡한 배급제도는 1990년대 초반 갑자기 붕괴됐다. 공무원, 군인, 대도시 주민들에게 배급제는 여전히 유효하며 특정 고위층에겐 최상의 배급품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들을 제외한 북한 주민 절대다수는 배급표가 아닌 돈을 요구하는 사유시장에서 식량과 생필품을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