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험악한 ‘전쟁의 말’
[이주의 키워드] bellicose rhetoric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향해 쏘아대는 험악한 언사가 매일의 일상이 됐다. ‘불바다’ 정도는 고전적 수사에 속하고 이제 미국본토와 하와이, 괌을 핵폭격 대상지로 적시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명의로 발표된 4월4일자 담화 하나만 보자.
“우리의 최고사령부가 내외에 엄숙히 천명한 대로 강력한 군사적인 실전 대응조치들을 연속 취하게 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겠는가 말겠는가가 아니라 오늘 당장인가 아니면 내일인가 하는 폭발 전야의 분분초초를 다투고 있다…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분별없는 핵위협은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우리 식의 첨단 핵타격 수단으로 여지없이 짓부숴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 혁명 무력의 무자비한 작전이 이미 최종 승인됐으며 이 사실을 백악관과 펜타곤에 통보한다.”
미국 국방부가 괌 기지에 최신 탄도미사일 방어체계(MD)를 구축한다고 발표한 뒤 몇 시간 만에 나온 반응이다. 이쯤 되면 사실상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이보다 더 센 ‘말폭탄’이 있겠나 싶다.
미국이 북한의 이런 구두협박을 거론할 때 흔히 쓰는 말이 바로 ‘bellicose rhetoric(호전적 언사)’이다. 일례로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 협박이 나오자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은 호전적 언사의 오랜 역사(long history of bellicose rhetoric)를 갖고 있다”고 성명의 말문을 열었다.
‘bellicose’는 전쟁을 뜻하는 라틴어 ‘bellum’에서 유래한 말이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또다른 단어가 ‘belligerent’다. ‘bellicose’와 ‘belligerent’는 일반 어법에서 ‘적대적, 공격적, 호전적’이란 뜻으로 혼용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의미가 약간 다르다.
‘bellicose’는 위 백악관 성명의 용례에 딱 맞게 ‘호전적’이란 뜻인 반면 ‘belligerent’는 ‘교전중인’이란 의미가 앞선다. 전쟁중인 교전당사국을 ‘belligerent countries’라 한다. 이 차이는 두 단어의 라틴어 어미말이 다른 데서 기인한다.
‘bellicose’는 전쟁이란 의미의 명사 ‘bellicosus’에서 유래한 반면 ‘belligerent’는 전쟁을 벌인다는 동사 ‘belligerare’에서 온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전자는 ‘warlike(싸움을 좋아하는)’ 후자는 ‘warring(싸움하고 있는)이 된다.
‘bellicose’가 라틴어 계열인 데 반해 이에 붙여 쓴 ‘rhetoric’은 웅변, 대중연설을 뜻하는 그리스어에 뿌리를 둔 말이다. 서양학문의 근간인 수사학을 말하는데, 현대영어에서 ‘정치적 표현 또는 언사’라는 용례가 생겼다.
북한이 끝간 데 없는 전쟁의 말을 쏟아내고 있는 데 대해 베이징에서 활동중인 미국 칼럼니스트 이반 오스노스(Evan Osnos)는 김정은 정권이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배우지 못한 탓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뉴요커(The New Yorker)> 최신호에 기고한 칼럼에서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중대사태에 대응하는 홍보(PR) 전략 부재로 과격언사 일변도로만 치닫고 있으며 이로써 새로운 위험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고조에 이른 언사와 행동 사이에 불일치가 드러나면서 북한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관객을 잃고 있으며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비아냥이 과도한 압박감으로 작용할 경우 예측불가의 공격적 행위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호전적 언사에 대응하지 말고 무시해 버려야 한다는 견해가 미국 조야 일각에서 조성되고 있다.
오스노스는 아시아엔(The AsiaN) 칼럼니스트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의 말을 빌어 “북한은 스탈린 시대 소련의 선전기법을 놀랄 만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전하며, 북한은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이미지가 좋으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는 ‘코카콜라 전략’, 즉 자본주의식 홍보기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