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탄생의 일등공신은 ‘노벨 사망’ 오보

[이주의 키워드] obituary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 사망이 이번 주 세계 언론의 주요뉴스를 차지했다. 한 시대 국제정세를 풍미했던 거인의 죽음을 놓고 공과를 따지기에 앞서 일생을 소개하고 추모하는 글이 쏟아졌다. 특히 ‘언론 제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 매체들은 유례없이 상세하고도 멋들어진 기사를 통해 세계 최상급 실력을 뽐내고 있다. <더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 <가디언> 등 유력 신문들은 여러 면을 할애해 대처 전 총리의 활약상을 조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가 1975~1990년 9차례에 걸쳐 커버에 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역사의 단면을 회고했다.

대처 관련기사를 지켜보면서 독자들은 한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렇게 길고 정교한 기사를 어떻게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에 내보낼 수 있느냐다. 실제로 영국 언론은 4월8일 정오(현지시각)께부터 인터넷과 방송을 통해 장문의 기사와 상세한 비디오를 쏟아냈다.

물론 미리 준비한 글과 영상자료들이다. 언론사들은 사망을 앞둔 유력인사들에 대해 평소 기사를 작성해 놓았다가 운명 즉시 출고한다. 지금 각 언론사에 저장돼 있는 사전제작 기사 대상자는 넬슨 만델라(95)부터 지미 카터(89), 폴 매카트니(71), 숀 코넬리(83), 피델 카스트로(87)까지 다양하다. 가까운 우리 경험에서는 1994년 김일성, 1997년 덩샤오핑, 2010년 김대중, 2011년 김정일?사망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누가 숨졌을 때 그 인물의 생애를 정리한 글을 영어로 ‘obituary’라 한다. 죽음을 뜻하는 라틴어 ‘obit’에서 유래한 말이다. 요즘은 ‘obituary’를 줄여서 ‘obit’이라 쓰기도 한다. 우리말 번역어는 ‘부음 또는 부고’인데, 서양과의 풍습 차이 때문에 충분한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

영어권 사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를 추모하는 글을 지역신문에 싣는 풍속이 있다. 대개 이름과 사망일자, 간단한 경력, 가족관계 등을 적은 판에 박힌 형식이지만, 사망자가 중요한 사람일수록 생애를 소개하는 글이 상세해진다. 이것이 상업화돼 유족들이 돈을 내고 싣는 신문의 줄광고가 됐다. 지역 근거를 가진 대부분의 영어권 신문이 몇 면을 이에 할애하고 있다.

사망기사를 미리 준비해놓는 바람에 기사의 대상인 유명인사보다 그 기사를 쓴 기자가 먼저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연극담당 기자 멜 거소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사망기사를 써놓고 2005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기사는 2011년 3월 테일러가 숨지자 상황설명과 함께 게재됐다. 앞 사자(死者)가 뒷 사자에 대해 글을 쓰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일간지에서 보통사람의 사망기사를 꾸준히 싣고 그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 이상기 전 한겨레신문 편집장의 <그대 떠난 자리에 별이 뜨고>(2007, 깊은강)이다.

사망기사를 본인이 죽기 전에 써놓는 것은 유명인만이 아니다. 보통 사람도 유서나 묘비명처럼 자신 또는 가족이 작성한다. 이렇게 미리 써놓은 사망기사(pre-written obituary)가 잘못 게재돼 종종 소동이 벌어지곤 한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 죽었다고 알려지는 것이다. 이를 일컫는 적절한 용어도 있다. ‘시기상조의 사망기사(premature obituary)’다.

그 유명한 사례가 노벨상 창립자로 유명한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다. 스웨덴의 엔지니어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기술자이자 발명가로 살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 치부의 수단이 주로 무연화약, 다이너마이트 등 무기 개발·판매이었던 탓에 명예로운 평판을 얻지는 못했다.

1888년 어느 날 프랑스의 한 신문은 노벨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 제목이 ‘죽음의 상인 숨지다(The merchant of death is dead)’였다. 실제로 죽은 사람은 노벨이 아니라 그의 형 루드비흐 노벨이었다. 사망기사를 본 노벨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세상에 어떻게 기억될지 실감하게 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노벨은 이미 써놓았던 유언장을 고쳐 재산의 94%를 공공재단에 헌납하도록 했다. 5개 분야에 걸쳐 인류에 공헌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노벨상은 이런 해프닝과 역설 속에 탄생했다.

때이른 사망기사에 얽힌 또 다른 일화의 주인공은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1853~1910)이다. 주옥 같은 명구로 유명한 그는 자신이 숨졌다고 보도되자 “나의 사망 보도는 과장이었다.(The report of my death was an exaggeration)”는 유머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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