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암 시한부 투병 지미 카터 대통령의 품위···”하나님 그를 지켜주소서!”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담당 논설위원,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암세포가 뇌로 전이돼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의연한 자세로 평소대로 고향인 플레인스 소재 마라나타 침례교회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8월 23일자 사설에서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한 카터 대통령이 품위 있는 전직 대통령의 귀감이 되고 있다”며 그가 벌이는 다양한 캠페인과 봉사활동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신문은 “카터 전 대통령이 호화로운 기념도서관을 짓거나 연설을 통해 수백만 달러를 벌지 않고, 민주주의 전파와 질병 퇴치에 기여해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금년 90세인 카터 전 대통령은 청바지에 재킷 차림으로 애틀랜타 소재 ‘카터센터’에서 8월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달 초 간에서 2.5cm 크기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MRI 촬영 결과 뇌에서 약 2mm 크기의 종양 4개가 발견됐다”며 “암이 내 몸의 다른 장기에도 전이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黑色腫, melanoma)이 간으로 전이돼 수술로 간의 10분의 1을 재거했다. 그런데 암이 뇌에도 전이되어 방사선 치료와 함께 신약을 투여했다고 밝혔다. 에머리대 의료진은 카터 전 대통령의 몸 상태는 좋지만, 완치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카터는 기자회견에서 암 전이 사실을 밝힐 때도 “내가 생존할 수 있는 날이 몇 주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아주 편안함을 느낀다”며 “이제 모든 것이 내가 경배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어떤 결과가 오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편안한 이유로 “멋진 삶을 살았고, 수천 명의 친구를 사귀었고, 즐겁고 기쁜 생활을 했기 때문”이라며 “암에 걸렸다고 화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는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일요일인 8월 23일 오전 10시 미 조지아주의 소도시 플레인스의 마라나타 침례교회에서 689회째 성경공부를 지도했다. 카터는 한 해에 약 40회 수업을 하는 것을 감안하면 17년 넘는 기간 봉사했다.

이날은 카터 전 대통령이 암 전이를 알린 8월 20일 기자회견을 가진 후 처음 열린 강의여서 평소의 30-40명보다 훨씬 많은 800여명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마라나타 침례교회는 카터의 성경교실을 누구에게나 개방하고 있으나 오전 9시 전까지 도착하여 10시에 성경교실을 시작하기 전에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해야 한다. 미국 전 대통령 경호 지침에 따라 교회에 들어가기 전에 보안 검색을 받아야 한다.

교회 공간 제약으로 선착순으로 수용하기 때문에 전날 밤부터 사람들이 교회 앞에 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325명이 앉을 수 있는 예배당은 설교 시작 두 시간 전에 이미 찼으며, 150명은 TV화면으로 카터의 강연을 볼 수 있는 별관에 수용되고, 그것도 모자라 300여명은 따로 대기해야 했다.

카터는 이날 사람들이 많이 참석한 것을 기뻐하면서 청중들에게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었다. 오하이오, 캘리포니아, 펜실베니아 등 다양한 주 이름이 나왔으며, 과테말라, 가나에서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카터는 워싱턴에서 왔다는 한 청중에게 “나도 그 곳에 한 때 살았던 적이 있다”고 농담을 하여 청중들과 교감을 나누었다.

그는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Love your enemies and pray for those who persecute you.)”는 마태복음 5장 구절을 낭독했다. 카터는 “짐이 무거우면, 주께 이겨낼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했다. 또한 1978년 캠프데이비드 중동 평화협상, 1994년 북한 김일성 주석과 핵 프로그램 협상 등을 거론하면서 “중재가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카터는 수업을 마친 후 청중들과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카터는 8월 30일에도 마라나타 교회에서 690회 성경공부 강의를 했다. 교회측은 카터의 성경교실을 9월과 10월에도 모두 여섯 차례 연다고 밝혔다. 이 일정은 현재 기준이며, 카터의 건강상태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교회는 덧붙였다. 카터 전 대통령이 성경교실을 계속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지미 카터는 1924년 10월 1일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땅콩농장주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잠수함에서 대위로 근무했으며, 민주당 소속 조지아 주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거쳐 1976년 52세 나이로 미국 제39대 대통령(1977-1981)에 당선됐다. 카터는 1980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레이건 후보에 밀리면서 재선에 실패했다.

대통령 재임 중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평가됐던 카터는 현재 ‘가장 존경받는 전임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2년 그가 설립한 카터센터는 전세계 인권과 환경 문제를 비롯하여 다양한 국제분쟁 해결에 개입했으며, 카터는 많은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카터는 2002년 8월 우리나라를 방문해 무주택 서민의 주거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1976년 미국에서 창설된 ‘해비타트’의 일환인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가해 자원봉사 활동을 펼쳤다. 신문기자가 망치를 들고 못을 박으며 일을 하는 지미 카터에게 일하는 소감을 묻자 “나는 한 채의 집을 지을 때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세워지는 것을 보고 있다”고 답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선한 마음과 따뜻한 가슴으로 이웃을 위해 펼치고 있는 희생정신과 봉사활동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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