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 논설위원의 비만이야기②] 광복 70년, 영양실조국에서 비만 비상국가로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담당 논설위원, 서울대 보건학박사회 고문] 대한민국은 6.25전쟁으로 국토가 잿더미가 되었으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하였다. 당시 쌀이 귀하여 쌀밥은 할아버지 생신 때 먹는 특식으로 1년에 한번 먹을 정도였다. 주식은 소나무 껍질을 보리와 함께 빻아 쒀 먹는 송구죽, 송구죽과 무를 재료로 한 남삐죽, 쑥과 보릿가루를 버무린 쑥범벅 등이었다. 따라서 영양실조가 만연하였다.
해방 후 이승만(1875-1965) 대통령의 농지개혁 덕분에 시장경제체제가 뿌리내렸으며, 박정희(1917-1979) 대통령이 경제개발계획의 꽃을 피워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 세계 최빈국 굴레에서 벗어났다. 또한 세계사의 중심에서 국운융성기를 누려 한국인의 삶도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은 영양과잉으로 인한 비만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과거에 지겹게 먹던 죽(粥)이 최근에는 웰빙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광복 후 70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는 국내총생산(GDP)이 3만1천배 가량 증가했으며, 이에 비례하여 국민의 소비력도 크게 늘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평균수명)은 1960년 51.2세에서 2013년 81.94세로 증가하였다.
서울시의 ‘2012년 기준 자치구별 출생 시 기대수명’ 통계에 따르면 서초구가 83.14세로 가장 길고, 강남구(82.97세)와 송파구(82.55세)가 뒤를 이어 부촌(富村)으로 분류되는 강남 3구 주민들은 다른 구민들에 비해 기대수명도 긴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전체 기대수명은 81.54세로 여성(84.22세)이 남성(78.92세)보다 5.3년 더 오래 산다.
최근(8월13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사무처(WHO WPRO, 필리핀 마닐라)와 보건복지부 후원으로 ‘비만예방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국제심포지엄엔 400여명의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참석해 주제별 2개 세션과 종합 토의로 진행됐다.
제1세션의 주제는 ‘아시아의 비만 실태’로 신해림 WHO WPRO 만성질병과장이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 지역의 비만 현황과 예방 및 관리’에 대해 발표했다. 제2세션은 ‘아시아의 비만 예방과 관리’를 주제로 말레이시아, 중국, 태국, 한국 등 아시아 주요 국가의 비만관리 전략에 대해 각국 비만관리 전문가들이 발표했다. 종합토의 시간에는 우리나라의 비만정책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심도 있는 토론이 진행됐다.
세계보건기구는 2009년 ‘비만’을 21세기 신종 전염병으로 지목했다. 비만은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정신적인 질병까지 유발할 수 있다. 비만과 관련된 질병에는 고혈압, 당뇨병, 뇌졸중, 고지혈증, 심혈관계 질환, 관절염과 통풍, 수면 무호흡증, 월경불순과 불임, 각종 종양(대장암, 유방암, 전림선암) 등이 있다.
비만은 에너지 섭취와 소비의 균형이 평형을 이루지 못할 때 발생한다. 즉, 에너지 섭취가 증가하거나, 에너지 소비가 감소하면 체중이 증가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과 함께 식생활의 서구화와 패스트푸드의 등장으로 인해 비만이 증가하고 있다.
비만인 경우 대개 체중이 많이 나가지만 근육이 많은 사람도 체중이 많이 나갈 수 있다. 따라서 체내에 지방조직이 과다한 상태를 비만으로 정의한다. 즉 신체비만지수인 체질량지수(BMI, Body Mass Index) 즉 체중(kg)을 신장(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 25(서양인은 30) 이상이면 비만으로 정의한다.
세계적으로 비만율이 1980년과 2014년 사이 두배 이상 증가하여 2014년 현재 전 세계 성인 인구의 약 13%(남성 11%, 여성 15%)가 비만에 해당된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공단이 검진 자료 1억900만여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비만 인구가 2002년 29%에서 2013년 31.5%로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고도 비만(BMI 30 이상)은 2.5%에서 4.2%로 1.7배, 초고도 비만(BMI 35 이상)은 0.17%에서 0.49%로 2.9배 늘었다. 특히 20대 청년들의 고도 비만은 11년 전보다 2.5배, 30대는 2.7배 증가하여 20ㆍ30대 젊은층의 고도 비만 증가 폭이 컸다. 비만 인구가 전체적으로 증가한 가운데 개인의 노력만으론 극복하기 힘든 고도 비만과 초고도 비만인 사람이 2013년 기준 55만명이 넘어선 상태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에서 아동청소년의 비만관리가 시급하다는 것이 강조됐다. 아동청소년 비만의 80% 이상이 성인 비만으로 이어진다. 아동청소년기 비만은 낮은 자존감, 우울증, 식이장애 등을 일으키거나, 제2형 당뇨병, 성조숙증, 성선기능저하(男兒), 다난성난소증후군(女兒) 등을 일으킨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아동청소년 비만실태 조사에 따르면 소득과 학력수준이 낮을수록 비만율이 높았다. 따라서 이들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관리가 필요하다.
비만과 관련된 5대 질병(뇌졸중ㆍ고혈압ㆍ심장병ㆍ당뇨병ㆍ이상지혈증) 치료 비용도 2002년 8000억원에서 2013년 3조7000억원으로 4.5배 늘었다. 현재 추세가 계속되면 2025년에는 이들 질환 치료비용이 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비만 관련 질병 진료비 증가가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적인 운영 측면에 부담을 주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비만 유병률 및 진료비 증가에 선제로 대응하기 위하여 지난해 11월 ‘비만관리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 올해 말 연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비만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도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