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칼럼] 구달, 헵번, 카터의 공통점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 박사가 지난 4월3일 팔순을 맞았다. 1960년 스물여섯의 나이에 시작한 침팬지 연구가 올해로 54년째가 된다. 1986년 그는 25년간의 연구 결과를 모아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저서 <곰비의 침팬지들>을 출간했다. 그러나 이 책의 출간을 기념하기 위해 그 해 11월 시카고에서 열린 침팬지 학회는 구달 박사의 삶을 전혀 새로운 길로 인도하고 말았다.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침팬지들이 얼마나 심각한 멸종 위기에 놓였는지 알게 된 그는 후학들에게 현장 연구를 맡기고 기꺼이 ‘역마살’ 인생을 시작한다. 그 때부터 그는 매년 300일 이상 세계 각국을 돌며 침팬지를 비롯한 야생 생물 보전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다.
<로마의 휴일>과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세계 모든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오드리 헵번은 20대 시절부터 이미 유니세프(UNICEF)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그는 거의 60세가 다 된 1988년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기근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위한 봉사 활동에 헌신한다. 그는 오스카, 에미, 그래미, 토니 등 네 개의 연예대상을 모두 휩쓴 몇 안 되는 최고의 여배우였지만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아이들은 그를 자기들을 위해 헌신한 성녀로 기억한다. 뉴욕시에 있는 유니세프 본부에는 ‘오드리의 정신’이라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제39대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대통령으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1981년 백악관을 떠난 이후 세계 평화 사절로서 그의 행보는 세인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다. 북한과 베트남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 걸쳐 그는 자신의 중재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국제 분쟁을 중재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 및 경제 정의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 받아 그는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세 분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세 분 모두 세계적인 지명도를 지닌 유명인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세 분은 모두 자신의 대중적 인지도를 자신의 안녕만을 위해 누린 게 아니라 공공선(公共善)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헌신한 분들이다. 나는 오드리 헵번과 지미 카터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 오드리 헵번에 대해서는 사춘기 시절 <로마의 휴일>을 보는 내내 그레고리 펙이 마냥 부러웠던 기억이 있고, 지미 카터에 대해서는 그의 재임 시절 미국에서 살며 그를 그저 어설픈 정치인으로 동정하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제인 구달이1996년 처음 방한했을 때 마주 앉아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는 행운을 계기로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다. 2003년부터는 격년으로 그의 방한 일정을 전담해왔고 2013년 7월에는 함께 ‘생명 다양성 재단’을 만들었다. 구달 박사는 금년 11월에도 또 다시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대중강연과 ‘뿌리와 새싹’ 행사를 펼칠 계획이다.
그는 거의 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인천 공항에 내리면 내가 마중하여 한국 일정을 함께 하고 며칠 후 또 비행기를 태워드리면 다음 나라에서 또 나 같은 사람이 그를 맞아 그 곳 일정을 소화한 후 또 공항으로 모신다. 구달 박사는 비행기에 탑승한 다음 승무원에게 “이 비행기 어디로 가는 건가요?”라고 물은 적도 있단다. 이미 확보한 엄청난 대중적 인지도를 온전히 남을 위해 바치는 삶,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