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칼럼] 속으로 썩어가는 생태계
엉겁결에 또 큰 일을 맡았다. 지난 10월6일부터 17일까지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BD COP 12)에 환경부 장관을 보좌하는 대체 의장이 되었다. 세계 194개국 대표단이 모여 지구의 생물다양성을 어떻게 보전할지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다. 역대 최대였던 소치동계올림픽 참가국 수가 88개국이었던 걸 감안하면 4년 후 같은 곳에서 열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나라보다 갑절이나 많은 나라가 모인 셈이다. 게다가 향후 2년간 우리나라가 의장국이기 때문에 나는 2016년까지 의장직을 수행해야 한다. 이래저래 일복은 타고난 모양이다.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은 원래 ‘자연의 다양성(natural diversity)’ 또는 ‘생물학적 다양성(biological diversity)’이라고 부르던 것을 하버드대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 후자를 축약하여 1986년 책의 제목으로 채택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후 생물학계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이제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거의 일상용어가 되었다.
생물다양성은 대체로 유전자다양성(genetic diversity)과 더불어 종다양성(species diversity) 그리고 생태계다양성(ecosystem diversity)의 세 수준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종다양성이 가장 흔히 쓰이는데 단순히 숫자로만 나타내기 어려운 개념이다.
두 연못 생태계를 비교해보자. 연못1에는 10종의 수서곤충이 서식하는데 게아재비가 전체 개체수의 90%를 차지하고 나머지 9종은 각각 몇 마리씩만 생존하고 있다. 연못2에는 5종의 수서곤충이 살지만 모두 고르게 20%씩 분포한다. 그렇다면 연못1에 분명히 더 많은 종의 수서곤충이 사는 건 사실이지만 그 곤충생태계가 과연 더 다양한지 즉 지속가능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계산에는 두 가지 항목이 포함된다. 다양성 지수(diversity index)는 얼마나 많은 종류가 존재하는지(풍부도, richness)와 그들이 얼마나 고르게 분포하는지(균등도, evenness)를 함께 측정하여 계산한다. 서식지가 통째로 파괴되면 그곳에 살던 생물이 한꺼번에 사라져 풍부도가 격감하여 경종이 울리지만, 시간을 두고 퇴화하는 생태계는 균등도가 손상되더라도 풍부도는 그대로 유지되는 듯 보여 자칫 안심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생태계가 지금 이런 상태에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지 모르나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
나는 2005년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라는 책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길은 무턱대고 출산을 장려하여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이민의 문을 활짝 여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우리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가난과 소득 불평등,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자원고갈과 지속가능성의 문제 등등의 밑바닥에는 예외 없이 인구증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저개발국의 인구증가율은 여전한데 좀 사는 나라들이 자국민의 수가 줄어든다고 출산 장려 정책을 편다면 지구의 미래는 그저 암담할 뿐이다. 인구는 많은 지역에서 적은 지역으로 이동하면 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지난 10여년간 여러 나라에서 적지 않은 이주자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인구에서 차지하는 출신국 숫자가 는다고 다민족국가가 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안정적으로 우리 사회에 터전을 잡아야 비로소 다양성을 담보한 다문화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