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칼럼] 희망 한 단에 얼마에유?

[아시아엔=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 지난 11월 제인 구달선생님이 우리나라를 다녀가셨다. 어느 단체의 초청으로 오셨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1996년 처음으로 방한하셨을 때 나는 선생님을 직접 인터뷰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후 서서히 친분을 쌓아 드디어 2003년에는 내가 직접 초청하여 다시 방한하셨다가 2006년부터는 우리나라를 아예 선생님의 월드투어 일정에 넣어주셨다. 그때부터 2년마다 오시니 이번이 7번째 방문이다. 이번 방한에는 팔순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두 가지 특별한 행사를 마련했다. 방한 이틀째인 11월23일(일요일)에는 내가 원장으로 있는 국립생태원에 마련한 ‘제인 구달 길(Jane Goodall’s Way)’ 명명식이 있었다. 선생님 명성에 걸맞게 그동안 수많은 영예가 주어졌지만 당신의 이름을 딴 길이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진심으로 기뻐하셨다. 그리고 25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김옥길 기념강좌’에서는 강연 직전 독일 브레멘대 박영희 교수님이 구달 선생님의 생명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해 작곡한 음악이 초연되었다.

2010년이 저물던 어느 날 구달 선생님이 내게 이메일 연하장을 보내주셨다. 거기에는 ‘네개의 촛불’이라는 파워포인트 자료가 첨부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평화(peace)의 촛불이 이제 아무도 자기를 지켜주지 않는다며 힘없이 스러지고, 믿음(faith)의 촛불도 더 이상 사람들이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며 쓸쓸히 사라지더니, 드디어 사랑(love)의 촛불마저 꺼져버린 방에 어린 아이가 들어온다. 언제까지나 함께 타기로 했던 네개의 촛불 중 이미 세개가 꺼져버린 걸 보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에게 마지막 촛불이 이렇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타고 있는 한 우리는 언제든 다른 촛불에 새롭게 붉을 밝힐 수 있단다. 나는 희망(hope)의 촛불이니까.”

2014년은 우리를 여러 차례 절망의 수렁으로 밀어넣었다. 동물행동학을 전공하는 나에게는 나름 퍽 진지한 꿈이 있다. 나는 언젠가 동물들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리라 꿈꾸며 산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의 세계에도 분명 평화와 사랑이 존재한다. 때론 믿음에 기반을 두지 않고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듯한 행동도 관찰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처럼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 2009년 여름 지하 600여m 갱도에 매몰되었다가 69일만에 구출된 칠레 광부들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종종 희망을 얘기한다. 희망은 무모할수록 더욱 고도의 인지능력을 필요로 한다. 희망은 우리 인간만의 특권이다. 절망의 2014년을 보내고 2015년을 맞이해, 상처받은 모든 생명에 다시는 영원히 꺼지지 않을 희망의 촛불을 밝히며 장사익 선생의 ‘희망 한 단’을 함께 듣고 싶다.

춥지만 우리 이제 절망을 희망으로 색칠하기
한참을 돌아오는 길에는 채소파는 아줌마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희망 한 단에 얼마래요”
“희망이유, 나도 몰라요.”
“희망 한 단에 얼마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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