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맘 하지원의 아프리카 탐방기] 생명·환경의 ‘공존 가능성’ 발견 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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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원 에코맘코리아 대표(지구환경학 박사)가 지난 2월 열흘 일정으로 아프리카 케냐를 다녀와 <매거진 N>에 기행문을 보내왔다. 그는 “2015년 2월 케냐에서 받은 느낌을 몇 단어로 표현하자면 공존, 환경, 그리고 생명”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아시아엔=하지원 에코맘코리아 대표]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의 지평선 위로 키 작은 나무 한두 그루가 서있는 아름다운 아프리카 사바나! 다양한 생명체가 함께 한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경이롭다. 초식동물부터 육식동물까지 함께 노는 공간. 사자가 앉아있는데 그 곁에서 물소가 놀고 있다.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사자는 배부르면 잡아먹지 않았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사냥을 하지만, 한번 먹으면 일주일 정도 버틴다고 한다. 이미 사자가 배부르다는 것을 안 물소는 그들을 겁내지 않았다. 인간들과 다른 모습이다.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지켜가는 마사이족.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지켜가는 마사이족.

나이로비 곳곳에서는 소나 염소떼가 시내의 잔디화단까지 올라와서 풀을 뜯어먹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알고 보니 목동들이 먼 외곽에서 소와 염소에게 물과 풀을 먹이기 위해서 그나마 지하수가 풍부한 나이로비까지 온 거였다. ‘나이로비’는 ‘맑은 물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약 47개의 부족들이 모여 나라를 이룬 케냐의 유일한 유목 부족은 마사이족이다. 마시이족은 나이로비에서 생활했는데, 글도 모르고 땅문서도 없었다. 가장 영리한 부족인 ‘끼꾸유족’에게 물이 가장 풍부한 땅인 나이로비를 빼앗긴 뒤, 외곽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들은 소똥과 흙을 섞어 지은 집에 살고 있었다. 소똥으로 만든 집은 따로 대문 없이 입구가 열려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입구가 우측으로 180도 정도 꺾인다. 사람만이 급격히 꺾인 좁은 통로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맹수 공격을 피하기 위한 지혜가 놀랍다.

집은 여성들이 짓고, 남성은 엉성한 나뭇가지 울타리를 만든다. 목동은 성인되기 전 아이들이 하고, 웬만한 노동은 거의 여성들이 한단다. 성인이 된 남성은 평소엔 빈둥대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목숨 걸고 싸운다고 한다.

마을의 허름한 학교.
마을의 허름한 학교.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은 가축이다. 집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넓은 공터는 목동이 해질녘 이끌고 오는 가축을 모아 돌보는 곳이다. 근처에 엉성하게 지어진, 이미 하얗게 변해버린 칠판 하나가 달랑 남은 학교가 있다. 떠돌이 생활을 하는 마사이족에게 제대로 된 교사가 있을리 만무하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 교육은 말뿐인 것이다. 마사이족의 삶은 비록 척박하지만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려고 분투하는 유일한 종족이다.

아프리카에서는 물이 부족해 수 십km 떨어진 곳까지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한다. 물을 떠오는 건 주로 여성들 몫인데 어린 소녀들이 이 일을 하느라 학교에 다니지 못한다. 게다가 먼 길에 물동이를 이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성폭행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물 문제가 여성인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산업화가 진행중인 시내에서도 지하수로 연결된 수도시설을 갖춘 데는 특별한 몇 곳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부분 주민들은 수도관이 연결된 곳까지 가서 물을 받아 통에 담아 집으로 운반해야 한다.

북부 아랍계와 남부 아프리카계 사이의 인종 및 종교 갈등으로 보이는 ‘다르푸르 분쟁’의 이면에는 물과 얽힌 사연이 있다. 유엔통계에 따르면 인도양의 기온 상승이 계절풍에 영향을 미쳐 강수량이 40% 정도 줄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가뭄 원인이 됐다고 한다. 수단 북부 아랍계는 주로 유목민이고, 남부 아프리카계는 농경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가뭄이 들면서 물이 부족해지자 북부 유목민이 남부 농부들의 땅으로 와 가축들이 마실 물을 구하면서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예전에는 남부 농민들도 북부 유목민들과 기꺼이 물을 나눴지만 가뭄이 계속되면서 끝없이 몰려드는 가축들을 막기 위해 담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 케냐에서도 유목생활을 하는 마사이족들이 농사 짓는 마을로 내려와 유사한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중동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갈등도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기후변화로 인한 곡물수급 위기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기후변화에서 분쟁까지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곳곳에 숨어있다. 그리고 이 파이프라인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결코 나와 무관할 수 없다. 지금 세대의 우리 자신은 물론 미래세대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킬리만자로 만년설 20년뒤 사라져…
만년설로 유명한 킬리만자로 주변은 고산지대의 시원한 기후와 물을 공급해주는 만년설 덕분에 커피 산지로도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그동안 풍부한 물로 주변 생태계가 유지되어 온 이곳이 지속되는 고온현상과 가뭄으로 인해 최초 관측 이래 만년설 적설량이 85% 가량 줄어들었다고 한다. 커피농장은 황폐화되었고 사람들은 기근에 시달리다 못해 산의 나무를 베어다가 숯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근근히 잇고 있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 수명이 앞으로 2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우울해졌다. 킬리만자로 주변의 얼룩말, 하이에나, 버팔로, 하마 등 우리 인류의 오랜 친구들은 20년 후엔 마실 물이 없어 더 이상 못 볼 지도 모른다. 눈물밖에 마실 물이 없을지도 모르는 생명을 위해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인간에게도 동물에게도 가장 귀한 생명줄인 물! 우리는 지금 이 물을 어떻게 쓰고 있나?

우리는 이 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아낄 것인가? 필자는 지난 2월 13~22일 열흘간 만나본 아프리카를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육식동물 사자와 초식동물 물소가 함께 뛰노는 동물의 왕국, 궁핍함 속에서도 전통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 마사이족, 인간의 이기심의 산물인 기후변화 탓에 만년설이 사라지는 킬리만자로.

그런데 필자의 안타까운 잠정적인 결론은 우리의 아름다운 아프리카 생태계가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간이 있었다.

우리는 이제 정말 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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