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칼럼] 의원님들, ‘도롱뇽 소송’을 기억하십니까?
도롱뇽의 꿈틀거림이 또 한번 우리 사회를 뒤흔들 전망이다. 2003년 10월 지율 스님이 대표로 활동하던 시민단체 ‘도롱뇽과 도롱뇽의 친구들’이 법원에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에 대한 공사 착공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시작된 이른바 ‘도롱뇽 소송’을 기억할 것이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소송은 결국 인간이 아닌 자연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며 설령 소송이 성립한다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하는데, 고속철도 터널공사가 꼬리치레도롱뇽의 보전을 비롯한 천성산의 환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형 국책사업을 중지할 수 없다는 판결에 의해 기각되었다. 그러나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율 스님은 2003년 2월부터 2006년 1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무려 300일 넘게 단식을 단행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같은 법원의 판결로 결국 고속철도는 건설되었고, 천성산의 꼬리치레도롱뇽은 다행히 절멸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지율 스님의 억지가 국가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결과론적 논평을 냈지만 환경과 보전의 갈등은 그렇게 간단하게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지율 스님의 단식 수준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환경 관련 갈등을 본질적으로 없애려면 경제성(economic feasibility)과 더불어 생태성(ecological integrity)을 사전에 검토하는 제도적 개혁이 시급하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획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인구편차를 3대1 이하로 하는 기준을 적용하면 지나친 투표 가치의 불평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를 2015년 12월 31일까지 편차 2대1 이하로 개정하라고 결정했다. 그러자 다시 한번 도롱뇽이 우리 정치계의 한복판에 등장했다.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엘드리지 게리(Eldridge Gerry) 지사가 자기가 속해 있던 공화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의 구획을 정했는데 그 모양이 마치 도롱뇽 같다고 하여 그의 성(Gerry)와 도롱뇽(salamander)를 합성하여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용어가 탄생했다. 우리보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훨씬 긴 미국이 저지른 황당한 정치 행각이 바야흐로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려는 것인가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구의 구획 현황은 이미 상당한 게리맨더링의 결과이다. 더 심해질까 우려할 뿐이다.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해 변화의 대상인 국회의원 300명을 제외하면 5천만 국민 거의 대부분은 도롱뇽을 또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 번 도롱뇽 소송의 경우에는 도롱뇽이 사라지는 걸 안타까워 한 국민이 적지 않았고 정작 지율 스님의 단식을 비난한 사람들도 도롱뇽이 완전히 멸종하는 걸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 때는 어떤 식으로든 도롱뇽의 보전이 모두의 꿈이었다면 이번에는 도롱뇽의 멸종을 염원하고 있다.
생김은 도마뱀과 비슷하지만 도롱뇽은 사실 개구리나 두꺼비처럼 어릴 때에는 물속이나 아주 습한 곳에서 아가미 호흡을 하며 살다가 성체가 되어서야 비교적 건조한 육상에서도 생활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도롱뇽은 평생 활동 범위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좁을 수밖에 없다. 연못이나 개울 근처 또는 거기서 그리 멀지 않아 사시사철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구역을 벗어날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좁디좁은 지역구나 챙기느라 국가 차원의 정치를 펼치지 못하는 도롱뇽 의원님들께서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시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