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칼럼] ‘통섭 원조’ 윌슨 교수는 ‘외톨이 유전자’를 타고 났다?
[아시아엔=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 이화여대 석좌교수] 하버드대학 박사 과정을 밟던 시절 지도교수님이셨던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교수는 세계적인 과학자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종종 실없는 농담을 잘 던지셨다. 즉흥적인 재치와 논리로 무장된 다른 하버드대 교수들과 달리 선생님의 순발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당신도 그런 자신에 대해 잘 아시는 것 같았다. 토론이 막 무르익을만하면 언제나 판을 깨는 농담을 던지곤 은근슬쩍 자리를 피하는 모습을 나는 여러 차례 보았다. 그러나 일단 당신 연구실로 돌아가 문을 닫아걸고는 그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논문과 책을 써낸다. 그가 누구인가? 내가 10년 전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진 ‘통섭(統攝)’의 원조가 아니던가? 학문의 경계를 낮추고 넘나들라고 부르짖어 놓고 정작 본인은 객쩍게 모여 앉아 논쟁을 벌이기보다 혼자 앉아 흩어져 있는 지식의 조각들을 짜맞추기를 훨씬 더 좋아한다.
윌슨 선생님이 내게 가장 자주 하신 실없는 질문이 있다. 어렸을 때 외톨이였냐고 묻고 또 물으셨다. 하지만 묻긴 하셨어도 단 한 차례도 내 대답을 들어주신 적이 없다. 질문을 던지곤 곧바로 당신 어렸을 때 얘기로 넘어가시곤 했다. 외판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늘 주거지를 옮겨 다녀야 했던 어린 윌슨은 초등학교를 몇 곳이나 다녔는지 기억하기조차 어렵다고 했다. 갓 전학한 학교에서 미처 친구를 사귈 틈도 없이 또 새로운 학교로 옮겨야 했던 그는 자연스레 혼자 숲과 늪을 뒤지게 되었단다. 그러다 보니 또래들보다 자연에 대해 훨씬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고 그 덕에 훗날 세계적인 생물학자가 된 것이다. 그는 나뿐 아니라 다른 많은 학생들에게 외톨이로 컸느냐는 질문을 했다. 자연에 대해 특별히 뭔가 많이 알고 있는 듯한 학생들에게만 질문했던 걸 보면 나도 선택 받은 학생이었다고 자부해도 될 듯싶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나는 어렸을 때 결코 외톨이가 아니었다. 친구들과 노는 걸 엄청나게 좋아해서 허구한 날 저녁시간에도 귀가하지 않았다가 부모님께 회초리도 참 많이 맞았다. 나갔다 하면 친구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매일 새로운 놀이를 제안하며 친구들을 선동하여 동네방네로 끌고 다녔다. 그래서 내가 없으면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막막했단다. 우리집 대문 앞에는 늘 동네 아이들이 모여 웅성거렸다. 가끔씩 금족령이 내려 붙들려 있는 나를 불러내려고 내 이름을 질러내다 어머니한테 혼이 나 달아나기도 했다.
윌슨 선생님은 종종 훌륭한 학자는 모름지기 ‘외톨이 유전자’를 타고난다는 망언을 멈추지 않으셨다. 그 유전자가 염색체 17번에 있다는,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 없는 얘기도 거침없이 하셨다. 한번도 고백할 기회가 없었지만 나는 그 유전자가 없을 것 같은 걱정에 은근히 주눅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곰곰이 돌이켜보니 비록 내가 유전자는 타고나지 못했어도 훗날 자연학자가 될 수 있게 도와준 환경적 요인이 있었다. 나는 성장기의 대부분을 직업 군인의 아들로 보냈다.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는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나는 결코 천재가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세 살 이전의 일 또는 장면 몇 개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모든 기억은 다 자연과 함께 한 기억들이다. 원래 외톨이 성품을 타고나진 않았어도 윌슨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자연과 친구 되는 게 훨씬 쉬웠던 어린 시절을 보낸 듯싶다. 어른이 되어 열대 정글을 누비며 연구할 때에도 나는 거의 언제나 혼자 다녔다. 한번도 두렵거나 외롭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 염색체에 실제로 ‘외톨이 유전자’가 있으려나? 결론은 아마 이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양면을 다 타고난다. 다만 환경이 우리를 어느 쪽으로 보내주는가가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