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칼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아시아엔=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정현종 시인의 시 ‘섬’은 고작 두 줄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섬들 사이에 물이 있는 줄 알았는데 섬이 사람들 사이에 있단다. 사람들이 섬들이고 그들 사이에 물이 채워져 있다면 배를 타고 물을 건너도 그 사람의 허락이 없이는 섬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에 섬이 있는 것이라면 그 섬이 개인 소유가 아니라면 특별히 주인의 허락 없이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 시가 고독한 현대인의 삶을 표현했다지만, 나는 이 시에서 오히려 긍정을 읽는다. 소통은 이룰 수 있고, 그래서 이루고 싶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통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학창시절 외운 ‘가지 않은 길’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또 다른 시 ‘담을 고치며(Mending wall)’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
담이 아예 없으면 이웃이 아니라 한 집안이지만 한 집안이라고 해서 반드시 화목한 것은 아니다. 담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지금처럼 너무 높으면 소통이 불가능하다. 이제 서로간의 담을 낮춰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의 존재를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서로의 장점을 배우며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
레바논 태생의 철학자이자 작가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라는 시가 적당한 소통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