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주한-주싱가포르 필리핀 ‘부부 대사’의 러브송

<사진=리사 위터 기자>

국경 넘나들지만? 각각의 줄이? 하나의 음악 만들어

필리핀 독립기념일(6월12일)을 앞두고 주한 필리핀 대사관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행사에서 루이스 크루즈(Luis T. Cruz) 대사를 만났다. 부인인 민다 크루즈(Minda Cruz) 여사도 함께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부인도 대사였다. 남편은 한국에서, 부인은 싱가포르에서 각각 필리핀 대사로 일한다. 그 다음 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독립기념일 행사는 남편이 싱가포르로 가서 참석한다고 했다. 싱가포르에 갔다 돌아온 루이스 크루즈 대사를 서울 이태원 주한 필리핀대사관에서 다시 만나 ‘대사 부부’로 살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각각 열린 국경일 행사에 부부가 나라를 오가며 참석한 것인가.
“한국에서 열린 행사에는 아내 민다가 싱가포르에서 왔고, 싱가포르 행사에는 내가 민다의 배우자 역할을 하러 갔다. 필리핀대사관이 주최하는 행사를 통해 대사 부인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각각 대사로 지내면 얼마나 자주 만나나.
“우리는 1983년 함께 외무부에 들어왔다. 결혼하면서 민다가 외교관 일을 그만둘 것인지를 놓고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결국 살면서 다른 나라에서 지내게 될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엔 둘 다 런던, 베이징에서 같이 일했다. 대사가 되면서 민다는 홍콩, 나는 광저우로 가게 됐는데, 주말마다 내가 민다와 아이들이 있는 홍콩으로 갔다. 금요일 오후 5시에 퇴근하면 8시에 도착했다. 그 후 민다는 싱가포르에서, 나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일했다. 이때도 거의 주말마다 싱가포르에 가서 가족들을 만났다. 이후 둘 다 마닐라로 돌아왔다가 2008년에 민다가 싱가포르, 나는 주한 대사로 부임했다. 지금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크루즈 가족은 부부만 아니라 가족이 모두 따로 산다. 딸은 결혼해서 호주에서 살고, 아들은 마닐라에서 영화업계에 종사한다. 남편은 서울, 부인은 싱가포르에 떨어져 지내지만 글로벌 가족을 위한 첨단기술이 있지 않은가. “이메일이나 스카이프, 구글행아웃 뿐 아니라 카카오톡, 바이버 등도 활용한다. 우리 부부는 직업이 같아서 서로의 일도 더 잘 이해한다. 문자메시지에 바로 답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부인은 그런 상황을 배려해준다.”

루이스 대사는 부부관계의 지혜로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의 ‘결혼’에 나오는 시구를 소개했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기뻐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소리를 내더라도 줄은 서로 떨어져 있듯이(Sing and dance together and be joyous, but each one of you be alone, even as the strings of a lute are alone though they quiver with the same music.)”

필리핀, 여성 사회적 영향력 점차 확대

-한국은 부부가 대사인 경우가 아직 없다. 필리핀은 어떤가.
“외무부에 처음 들어왔을 때 외교관 커플이 셋 있었다. 우리는 비교적 가까운 나라에 있었는데, 외무부에서 결혼한 커플들을 배려해주는 면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외무부(Department of Foreign Affairs)를 ‘가족부(Department of Family Affairs)’라고 부른다(약자가 DFA로 같다).”

-필리핀 여성의 사회참여도가 높은 것 같다.
“필리핀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고 있다. 젠더 이슈에 민감하고 권리를 주장할 줄 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을 존경한다. 2011년 필리피노한국배우자협회(FKSA)가 국회에 이중국적을 인정해달라고 탄원해서 통과됐다. 부산에서는 필리핀 여성이 남편을 부부강간혐의로 법정에 세워 이기기도 했다. 필리핀은 인권이나 노동고용관련법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가정부 등에게도 각종 보험을 포함한 고용복지를 제공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좋아하는 한류스타는 ‘수취인불명’의 김기덕 감독”

필리핀과 한국의 문화교류에 대해 크루즈 대사는 ‘한류’의 영향을 높이 평가했다. 드라마나 영화는 관광과도 연결된다. 드라마 <주몽>과 <선덕여왕>을 모두 봤다는 그는 촬영지인 경주 밀레니엄파크와 선덕여왕 무덤까지 가보게 됐다고 한다. 다문화 어린이를 위한 프로젝트에서 배우 송일국과 함께 작업한 얘기도 들려줬다.

“아시아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는데 나는 타갈로그어로, 송일국씨는 한국어로 해설했다. 나라 간의 우호·영향·우정을 증진시키는 것은 외교관들만의 일이 아니다. 군대나 경찰과 같은 하드파워, 그리고 문화와 같은 소프트파워가 있는데, 한국은 소프트파워에 매우 강하고 이는 다른 부문에도 이득을 준다. 드라마 <대장금>은 필리핀에 한식당을 유행시켰다.”

루이스 크루즈 주한 필리핀대사와 부인인 민다 크루즈 주싱가포르 필리핀대사(왼쪽)가 6월7일 서울에서 열린 ‘필리핀 독립기념일’ 행사에 함께 참석했다. <사진=박소혜 기자>

크루즈 대사는 한국문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한류스타를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김기덕 감독을 꼽았다. 그가 만든 전 작품을 봤다고 했다. 김 감독 영화의 특징은 “주연배우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의 영화는 움직이는 시와 같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수취인불명(Address Unknown)>이다. 흑인 미군병사와 결혼한 한국여성이 아들과 지내는 이야기인데, 아들은 한국인이라고 주장해도 사회가 받아들이질 않는다. 그는 인종차별이나 다문화 아이들과 같은 무겁고 민감한 문제들을 다룬다. 그는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주제를 말하고 있다.”

필리핀은 6·25전쟁 참전국이다. 크루즈 대사의 아들은 지난 2009년 ‘6·25전쟁 60년’을 기념해 필리핀 참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그 작품이 <아리랑TV>에서 방송됐다고 한다. 참전군인 중에는 피델 라모스(Fidel Ramos) 전 대통령도 있다. 6·25전쟁에 장교로 참전한 그는 1992년 대통령이 됐다. 정전 60주년인 올해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이 다시 한국을 찾아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다고 했다.

민다 크루즈 대사가 싱가포르에 사는 필리핀인을 위한 잡지 ‘Magazine F’(2011년 8월호)에 표지인물로 실렸다.

크루즈 대사는 한국과의 협력강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필리핀은 전쟁 중인 한국을 도왔고, 한국은 가난한 필리핀을 도왔다. 앞으로 경제부문에서 양국관계는 더 확장되어야 한다. 연간 100만명 넘는 한국인이 필리핀을 찾는다. 필리핀의 제1 관광객이다. 필리핀은 한국이 기술이전을 더 많이 해주길 바란다. 필리핀은 원자재를 한국에 보내고 한국은 완제품을 필리핀에 보낸다. 우리는 한국에 바나나를 보내고 한국은 바나나우유를 만들어 중국에 보낸다. 우리는 반도체 부문 등 다양한 부문에서 교류를 넓혀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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