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휴머니스트 최재천 칼럼] 7월18일 ‘제돌절’을 기억하십니까?

[아시아엔=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국립생태원 원장]7월 17일은 제헌절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헌법에 의해 통치되는 민주공화정임을 공표하기 위해 1949년에 국경일로 정했다. 7월 17일은 사실 조선 왕조가 건국된 날이다. 민주헌법을 하필 왜 그날 공표했는지 의아하긴 하다. 역사의 연속성을 위해서라지만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제헌절과 함께 삼일절, 광복절, 개천절도 국경일로 정해지며 이들을 한데 묶어 ‘4대 국경일’이라 불렀다. 그러다 2006년부터 한글날도 국경일에 포함되며 이제는 ‘5대 국경일’을 기리고 있다.

모든 국경일에 다 노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 경사를 온 국민이 기념하기 위해 그날이 반드시 공휴일일 까닭은 딱히 없어 보인다. 하지만 공휴일인 국경일과 그렇지 않은 국경일은 왠지 격이 다른 것인 양 의견이 분분하다. 제헌절은 원래 노는 국경일이었는데 2006년 주 40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며 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2007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반면 한글날은 1990년 공휴일에서 빠졌다가 한글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며 2012년 다시 노는 국경일로 부활했다. 최근 정부가 경기부양 차원에서 공휴일을 특정요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마침 금년 제헌절이 일요일이라 제법 많은 누리꾼들이 구시렁거리고 있다. “헌법이 그렇게 우습냐”며.

이런 와중에 나와 내 동료들은 제헌절 바로 다음 날인 7월 18일을 기린다. 이름하여 ‘제돌절’! 7월 18일은 바로 불법으로 잡혀 시설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그의 친구들을 제주 바다에 방류한 날이다. 2009년 제돌이를 비롯해 모두 다섯 마리의 돌고래가 포획돼 서귀포 퍼시픽랜드에 억류됐다. 그 중 복순이와 태산이는 끝내 길들임을 거부해 작은 수조에 따로 격리됐고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는 돌고래쇼에 투입됐다. 그러던 중 동물 맞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제돌이는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다. 서울대공원은 경기도 과천에 있지만 실제로는 서울시 소속기관이다. 그래서 원래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의 관심사가 되어 ‘제돌이 야생방류 시민위원회’가 결성되고 필자가 위원장을 맡았다. 학자,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서울대공원 관계자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방류를 준비했다. 2013년 4월 8일 대법원 판결이 나자마자 나는 몇몇 위원들과 함께 제주 퍼시픽랜드로 달려갔다.

춘삼이와 삼팔이는 성산항에 마련된 가두리로 보냈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태산이와 복순이는 아시아나 화물기에 태워 서울대공원으로 이송했다. 2013년 7월 18일 가두리에서 적응훈련을 받던 중 찢어진 그물 사이로 먼저 빠져나간 삼팔이를 제외한 제돌이와 춘삼이 방류행사가 제주 김녕 앞바다에서 벌어졌다. 우려했던 태산이와 복순이도 2015년 7월 6일 제주 함덕 앞바다에 방류된 후 잘 살고 있다.

제돌이와 춘삼이를 풀어주는 행사에서 나는 이런 축사를 했다. “돌고래와 우리의 갑을관계가 재정립되는 순간입니다. 지금까지는 제돌이와 그 친구들의 묘기를 보려면 수족관을 방문해서 몇 푼의 돈을 내면 가능했지만 이제부터는 이곳 제주바다까지 오셔야 합니다. 오신다고 이들이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애써 오셨는데 못 만나실 수도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또 오셔야지요. 만나고 싶으면 계속 오셔야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 그때 한없이 기뻐하시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돌고래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낸 일이 내 평생 한 일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다. 돌고래는 고도로 지능적인 동물이라서 그들이 갇혔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다시 자유를 찾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제돌이를 안고 바다로 향하던 배 위에서 나를 그윽하게 올려다보던 그의 눈을 잊지 못한다. 단군 이래 처음 해본 일이었다. 애써 잡은 야생둥물을 정중하게 그들의 고향으로 모셔드린 일은. 제돌절은 대한민국이 드디어 생태선진국 반열에 진입하는 순간을 기리는 날이다. 제6대 국경일로 지정할 수 없다면 우리끼리라도 민경일(民慶日)로 정하고 기릴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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