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칼럼] 내가 ‘타잔’을 좋아한 이유
오래 전에 어디선가 읽은 얘기다. 염라대왕 앞에는 우리의 수명을 나타내는 촛대들이 켜져 있단다. 우리들 각자에게 제가끔 촛대가 하나씩 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촛대가 길면 오래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일찍 불려가는 것이리라.
어느 날 염라대왕님이 실수로 재채기를 했단다. 그래서 애꿎은 촛불 세 개가 꺼졌다. 멀쩡하게 잘 살던 남자 셋이 졸지에 생을 마감하고 염라대왕 앞에 불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했던지 염라대왕은 그 세 사람에게 곧바로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 줄테니 어떤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은지 소원을 말해보라 했다.
그러자 한 사람은 그 동안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던 게 한이라며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했다. 염라대왕은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그 남자를 어마어마한 부자의 아들로 만들어 세상에 내려 보냈다. 두 번째 남자는 돈은 많지 않아도 좋으나 남들이 다 우러러보는 지위 높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해서 염라대왕이 역시 그리 해줬다.
드디어 세 번째 남자 차례가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돈도 명예도 다 원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어느 산 속에서 아무 근심걱정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염라대왕이 버럭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단다. “야, 이 놈아. 그런 곳 있으면 내가 가지, 널 보내겠느냐?”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물으면 모두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이 매일매일 하고 있는 일을 보면 행복해지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마치 돈만 많으면 행복도 살 수 있는 줄 알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만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 가족의 행복마저 내차는 사람도 있다. 돈도 지위도 그 어느 것도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늘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
몇 년 전 과학기술부로부터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소감으로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과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한 말이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아주 열심히 하면서 굶어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돈은 내가 따라가는 게 아니다. 내가 열심히 살면 돈이 나를 따라온다. 자기가 평생 동안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기어코 찾아야 한다. 일단 찾은 다음에는 그저 앞만 보며 달리면 된다.”
나는 어려서 타잔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시원한 나무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온갖 동물들과 함께 살며 손만 뻗으면 잘 익은 바나나며 파인애플이 흐드러진 곳. 나는 타잔 영화를 볼 때마다 이 담에 크면 꼭 타잔네 동네에 가서 살리라 맘먹었다. 나는 지금 열대 정글을 누비며 동물 관찰을 하는 생물학자로 살고 있다. 나는 내 삶을 염라대왕이 바꾸자 해도 절대 바꾸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