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칼럼] 종교의 미래
2011년 12월 15일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ins)가 식도암으로 62세의 짧은 삶을 마쳤다. 그의 책은 1년 먼저 나온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가려 그리 큰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 도킨스의 책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다. ‘종교가 어떻게 모든 걸 독살하는가’라는 부제가 암시하듯이 그는 이 세상 거의 모든 죄악에 종교가 결부되어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한 종교적 미덕의 표상인 테레사 수녀에 대해서도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아니라 그저 가난 그 자체의 친구였을 뿐”이라고 폄훼했다.
우리 인류 집단은 거의 예외 없이 모두 나름의 종교를 갖고 있지만, 인간을 제외한 다른 어떤 동물에서도 종교라고 부를 수 있는 행동은 관찰되지 않는다. 다만 여왕개미가 뿜어내는 강력한 페르몬의 영향으로 스스로 번식을 자제하며 평생 여왕을 위해 헌신하는 일개미들의 행동을 보며 사이비 종교 집단을 떠올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비슷한 행동 유형이 벌, 흰개미, 그리고 벌거숭이두더지에서도 나타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모두 우리처럼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동물이라는 점이다.
종교는 사회적 현상이다. 이 세상 어느 종교든 그 궁극에는 결국 나와 신의 만남인 기도가 있지만, 홀로 사는 동물에게 종교가 진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다. 우리는 종종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에 처했을 때 신에게 매달리곤 하지만, 그것은 아마 종교에 어느 정도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일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최초의 인류가 과연 종교에 귀의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까?
연말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구세군 냄비,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하는 ‘밥퍼’와 같은 종교 단체, 그리고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만 보더라도 종교는 분명히 우리 사회에서 훌륭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만일 도덕성이 인간 본성의 일부라면 종교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행동의 표현일 수밖에 없다. “신을 설명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런 신에게는 기도하지 않겠다.”던 어느 신학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의 종교 행동은 반드시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