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톤즈’ 이태석 신부와 ‘부활’ 구수환 감독

울지마 톤즈


이태석 신부의 기적 그린 영화 <부활>
남수단 
톤즈에 되살아난 57명의 이태석들
“우리 모두 이태석 신부가 될 때 세상 행복해질 것”

‘남수단의 슈바이처’라 불린 故 이태석 신부에 대한 다큐멘터리 <울지마톤즈>를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태석 신부는 나의 고교 3년 후배다. 최근 출간된 모교인 <경남중고 동창회 80년사>에도 이태석, 이름 석자가 찬란하다. ‘사랑의 화신’ 같은 그의 숭고한 발자취가 나온다.

<울지마톤즈> 영화에 이어 <부활>(復活)이란 이름의 영화가 개봉, 재개봉된 바 있다. 코로나로 극장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던, 2020년 7월 9일과 2021년 3월 26일.

구수환 감독

영화 <부활>의 구수환 감독이 최근 설 연휴 때 유튜브에서 뜨거운 관심을 불렀다. 구수환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채널 동영상이 최근 200만 조회수를 훌쩍 넘었다. 이 영상은 1년 6개월 전 업로드돼 당시 15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후 유튜브 동영상은 설 연휴에 조회수가 다시 급등하며 200만 뷰를 돌파했다.

구수환은 故 이태석 신부의 제자들이 그의 숭고한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이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부활> 감독이다. 또한 이태석 재단의 이사장을 4년 째 맡아 이태석 신부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 구수환 감독은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 불신이라는 시대 상황이 맞물려 고 이태석 신부가 부활하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그는 수백개가 넘는 댓글에 직접 답변을 남기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또 고 이태석 신부가 해오던 일이 중단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누군가는 “이태석 신부님! 진정한 성자요 천사이십니다”라고 말했다. ‘불교 신자가 본 예수’라는 글도 누군가 썼다.

영화 부활은 이태석 신부가 48세에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지 10년 뒤, 어린 제자들이 성장하며 벌어진 기적같은 일을 조명했다. 영화를 만든 구수환 감독은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가 아닌 불교 신자다. PD로 일해온 구 감독은 은퇴 자금을 탈탈 털어 이 영화를 제작했다. 불교 신자가 가톨릭 사제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를 연이어 제작했다.

PD 중에도 시사고발 프로를 주로 만들었는데, 감동과 사랑을 담은 영화를 제작한 이유를 털어놨다. “이태석 신부의 형, 이태영 신부가 2019년 59세 나이로 선종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깡마른 모습으로 저를 불러 두 가지 유언을 남기셨어요.”

하나는 2020년 1월부터 맡아온 이태석 재단을 계속 이끌어가 달라는 것, 다른 하나는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에 동생의 삶을 정리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구수환 감독은 이태석 신부의 삶을 어떻게 정리할까 한참 고심했다. 그러던 중, 문득 이태석 신부가 남 수단에 작은 학교를 짓고 가르쳤던 어린 제자들이 생각났다.

영화 부활 포스터

남 수단에 찾아갔더니 의사이거나 의대생이 된 이태석 신부의 제자만 57명에 달했다. 가난한 남수단의 작은 톤즈 마을에 신부님이 지은 허름한 학교에서 6년만에 국립대 의대생 57명이 나온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니, ‘기적 같은’이 아니라 사실상 ‘기적’이 일어났다. 이후 공무원, 대통령실 경호원, 언론인까지 모두 70명의 제자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 신부님 때문에 의사가 됐고 신부님처럼 살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구수환)

제자들은 생전의 이태석 신부가 그랬던 것처럼 환자를 마음으로 돌봤다. “병원에서 진료하는 모습을 보니, 먼저 ‘어디가 아프세요~?’ 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환자 손부터 잡는거예요.”

구수환이 물었다. 가는 곳마다 ‘손을 잡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 진료를 하는 그 이유’를 캐물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한결같이 답했다. “이태석 신부님이 해오시던 진료 방법입니다.”

“아이들이 신부님의 삶을 그대로 살고 있구나!”
너무 기쁜 나머지, 구 감독은 손뼉을 치며 영화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태석은 죽었지만, 부활한 것이다. 한명의 부활이 아니라 57명으로, 앞으로 그 숫자는 민들레 홀씨가 퍼지듯 더욱더 많은 수로 늘어날 거다.

“어느 날, 이태석 신부 제자들이 한센인 마을에 가서 봉사 진료를 했어요. 60명 정도 사는 마을인데, 환자가 300명 정도가 모였어요. 의사가 없으니 주변 마을에서 모두 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거예요.”

제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밥을 굶으며 진료를 했다. “어느 환자는 12년만에 진료를 받았는데, 환자에게 ‘의사가 당신 손을 잡았을 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이태석 신부님이 저희들 곁에 살아서 돌아오신 것 같습니다’라고 답을 하더군요.”

이태석의 제자들도 “신부님께서 항상 우리 옆에 계신 것 같았다”고 했다. “신부님의 일을 우리가 대신하게 되어서 너무, 너무 기쁩니다.”

단순히 이태석 신부가 가르친 남수단 톤즈의 제자들이 좋은 일을 한다는 게 아니다. “고 이태석 신부의 사랑과 봉사가 제자들을 통해서 되살아났구나!” 바로 ‘이것이 부활(復活)의 참 뜻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원래 영화 제목으로 생각했던 ‘우리가 이태석입니다’를 그 자리에서 ‘復活’로 바꿔버렸다. 구수환은 털어놓는다. “이태석 신부에게 빠져든 것은 단순히 그 분의 봉사 때문이 아니라,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간 방식’ 때문입니다. 그것을 우리 사회에 이야기하며 전하고 싶었지요.”

한센병 환자들이 고통 속에서도 “이태석 신부님 이야기만 꺼내면 환하게 웃더라”고도 했다.

“저는 이태석 신부를 존경스럽게 만들거나, 감동받게 하려고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구수환의 이 말이 ‘이태석 부활’의 정곡을 찌른다.
“그가 살았던 삶은 누구든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구 감독은 “영화 <울지마 톤즈>에서는 이 신부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말한다.

“하심(下心)의 리더십과 경청하고 공감하며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실천이 바로 이태석 신부님의 생애이자 그의 정신이었지요.”

영화 <울지마 톤즈>에서는 이런 삶에서 감동을 느낀다면 일상에서 실천해 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톤즈의 아이들은 이태석 신부를 따랐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뒤 이태석 신부의 뒤를 이어, 그를 본받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구수환은 ‘부활의 기적’을 본 것처럼 감격했다. “우리가 ‘이태석 신부’가 됐을 때 사회는 굉장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復活>의 핵심이지요.”

구수환은 최고로 ‘행복한 저널리스트’라고 자부한다. “그 분(이태석 신부)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삶은 뜻대로 안 되고, 불만 투성이었을 텐데 말이죠. 그 분을 통해 이야기하며 즐겁고, 하는 일에 굉장히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이골이 났었다. 이태석 신부에 관한 휴먼-종교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종교영화라고 보지만 이건 굉장히 강한 고발영화예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고발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해도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건 어려웠는데, 이 영화를 통해 많은 분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더욱이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하나의 기준을 제시했다”고 구수환은 생각한다. 성직자의 성폭력 문제, 권력 분쟁, 세습 이슈가 나올 때마다 “이태석 신부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글들이 나와서다. 이태석 신부가, 이태석 정신이 어느덧 성직에 대한 ‘살아있는 하나의 기준’이 됐다는 거다.

“일부 의료진과 교사, 정치인들에 관한 사회적 문제가 터져 나올 때에도 의사로서, 교육자로서, 지도자로서의 바람직한 상으로 이태석 신부가 귀감이 되더라고요.”

구수환은 “개인적으로는 영화 흥행보다는 이런 부분에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다.

언론에서 ‘불교 신자가 가톨릭 사제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계속 제작하는 이유가 있느냐?’ 물으면 그는 답한다. “종교의 역할이 뭘까요?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하는데, 이태석 신부의 삶이야말로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승복을 입은 스님이든, 예복 입은 목사든, 사제복을 입은 신부든 종교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해왔다.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보며 그것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2년 전 하늘의 별이 된 정진석 추기경이 감사패를 그에게 주겠다고 했다. “그때 (추기경님과) 대화 중에 ‘저는 톤즈 마을에서 예수를 보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상하잖아요? 불교 신자가 예수님을 보고 왔다니까요.”

“당신이 본 예수는 어떤 분이었습니까?”라고 정진석 추기경이 물었다. “제가 본 예수님은 대단한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제 마음에 있는 분이었습니다. 톤즈 성당은 여기처럼 으리으리하지 않습니다. 허름한 성당 벽은 포탄을 맞아서 구멍이 뚫렸는데, 사람들이 성당만 들어오면 얼굴이 밝아지는 걸 봤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의 힘이라 생각했습니다.”

구수환이 말한 ‘정답’에는 감동과 울림이 배어나, 아니 흘러 넘친다. 한 신부의 숭고하고 고결한 희생과 봉사의 삶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게 바로 부활이요 기적이다. 사람들이 남수단 톤즈를 통해 ‘이태석 신부의 예수적 삶’에 감동을 받는다. “그분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병마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안타깝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기적을 만들어낸 이태석 신부를 추모합니다. 그의 고결한 삶이 한국의 국회의원들한테도 전해져 제발 서로 미워하지 말고 싸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살다 가느냐?’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 물음에 진정한 답을 주신 분이 고 이태석 신부요 그의 ‘예수적 삶’이란다.

이태석 신부 어머니와 구수환 감독

구수환 감독이 설 연휴에 고 이태석 신부의 어머니를 뵌 얘기를 SNS로 전했다. 올해 98세로 건강은 다소 약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해맑은 웃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구 감독은 근황을 전한다.

이태석 신부의 노모는 가족들이 모시고 있다.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이 신부 누나는 지자체에서 주는 효부상을 최근 받았다. 구 감독이 이 신부 어머니를 처음 만난 건 2010년, 그가 선종한 후 열흘 뒤 당시 ‘울지마톤즈’ 제작을 위해 만났다.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낸 후 힘들어하는 어머니 손을 잡고 “아드님이 남긴 사랑이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도록 하겠다”고 구감독은 다짐했다.

그는 약속한 대로 이태석 신부 관련영화 2편, 다큐멘터리 3편을 제작했다. 재단 이사장도 2020년 1월 이후 맡아 고인을 추모하고 알리는 일에 전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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