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칼럼] 신약 제조기 ‘동물의학’

수의학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동물 세계에도 그들 나름의 의학이 있다는 얘기를 하려 한다. 1972년 탄자니아 곰비국립공원의 구달 박사 연구진은 전혀 침팬지답지 않은 기이한 행동을 관찰한다. ‘휴고’라는 이름의 침팬지가 평소 그들의 식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표면이 매우 거친 이파리를 먹더란다. 그것도 그냥 씹어먹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접어서 잠시 입에 물고 있다가 단번에 꿀꺽 삼키더란다. 마치 우리가 알약을 삼키듯.

휴고가 삼킨 아스필리아(Aspilia)는 국화과 식물로서 그 지역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복통이 있거나 장내 기생충을 구제하기 위하여 섭취하던 약용식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침팬지들이 인간이 행동을 예의 주시하고 배운 것은 아닐 것이다. 야생 곰들이 배탈이 났을 때 뜯어먹는 풀을 눈여겨보았다가 약초로 사용했다는 북미의 인디언들을 보더라도 둘 중 누군가가 배웠다면 그건 아마 침팬지보다는 우리 인간일 것이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나 개가 몸이 불편할 때에는 평소 먹지 않던 풀을 뜯어먹더라는 관찰은 이미 고대 중국이나 로마 시대의 기록에도 발견된다.

그동안 동물들의 의료 행위는 주로 포유동물에서 관찰되었는데 최근 곤충에서도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에모리대학 연구진은 제왕나비(monarch butterfly) 암컷이 특정한 체내기생충에 감염되면 특별히 독성이 강한 박주가리 잎에 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그동안 제왕나비 애벌레가 박주가리 잎을 갉아먹는 까닭은 박주가리의 독성을 품고 있으면 포식동물들이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왔는데, 이제 기생충을 구제하는 효능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지금까지 ‘동물 동의보감’에 수록된 약초 목록에는 우리나라에도 서식하는 식물들과 가까운 종들이 여럿 들어 있다. 우리 산야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다년생 덩굴초본인 갈퀴꼭두서니와 흔히 달개비라고 부르는 닭의장풀을 비롯하여 제법 여럿이다. 특별히 부가가치가 높아 최근 우리 정부가 신약 개발을 중요한 국가 전략산업 중의 하나로 육성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참에 우리도 동물의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동물들이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발견해낸 약초들을 우선적으로 검토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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