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칼럼]나폴레옹도 거스를 수 없었던 ‘해류’
2011년 3월 거대한 지진 해일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의 냉각수가 감소하며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편서풍 덕택에 대부분의 오염물질은 일본의 동쪽으로 이동했지만 드물게나마 편서풍대가 남북으로 물결치는 이른바 ‘편서풍 파동’이 일면 서쪽으로 이동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 기상청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2011년 4월 4일부터는 일본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방사능 오염수 1만여 톤을 예고도 없이 바다에 흘려버리는 몰지각한 일을 저질렀다. 그래서 국립수산물 품질검사원은 모든 수입 수산물과 우리 원양어선이 잡아오는 수산물에 대해 일일이 방사능 검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불안은 이제 한반도 연안에서 잡히는 어류로까지 번지고 있다. 일본 동쪽 바다의 오염된 바닷물 또는 어류가 우리 근해로 넘어올 가능성을 염려하는 것이다. 후쿠시마 연안에는 북태평양에서 남하하는 쿠릴 해류가 흐른다. 이 해류를 만나 태평양 동쪽으로 밀려가다 북미 대륙에 다다르면 대부분 캘리포니아 해류를 타고 남하한 다음 북적도 해류를 따라 서진하여 다시 쿠로시오 해류에 합류한다. 쿠로시오 해류는 그 일부가 갈라져 나와 우리나라 동해로 유입되지만 대부분은 일본 동쪽 연안을 따라 북상한다.
나폴레옹이 유배되어 죽어간 세인트헬레나 섬은 남대서양 한가운데에 있다. 일단 유럽에서 엄청나게 멀기도 하지만 그곳을 유배지로 정한 또 다른 이유는 해류의 방향 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이 설령 뗏목이라도 만들어 탈출을 시도하더라도 그의 뗏목이 거의 확실하게 남적도 해류를 타고 남미 대륙의 남단을 향해 밀려갈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해류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의 재앙을 다룬 영화 <투모로우>는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 북해로 흘러들면 바닷물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해류의 방향이 바뀌어 뉴욕 시가 빙하로 뒤덮일 수 있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영화처럼 그런 일이 불과 며칠 사이에 벌어질 리는 없지만 이 같은 시나리오는 이미 기상학자들에 의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인재로 인한 온갖 환경 재앙이 지구촌 곳곳에서 고삐를 풀어버리려는 망아지들처럼 날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