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칼럼] 겨울 문턱, 개미와 베짱이를 떠올리는 이유

‘개미와 베짱이’ (출처 아람세계명작요술램프)

[아시아엔=최재천 칼럼니스트]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모순들 중에는 이런 모순도 있다. 인터넷 속도는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국가에서 소통이 사회 문제라니 이 무슨 기막힌 모순이란 말인가? 통신 수단의 발달이 소통의 원활함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오랫동안 개미를 연구해온 동물행동학자이다. 사람들은 대개 개미 사회는 여왕개미 혼자 전권을 쥐고 통치하는 전체주의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상당히 민주적이다. 일개미들은 똑같이 암컷으로 태어났지만 여왕개미가 뿜어내는 페로몬인 여왕물질(queen substance) 때문에 생식기관의 발육이 멈춰 알을 낳지 못한 채 평생 여왕을 위해 충성을 다한다. 하지만 개미제국의 사회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면 변방의 일개미들은 슬금슬금 알을 낳아 기르기 시작한다. 휘발성 화학물질인 여왕물질의 영향력이 변방으로 갈수록 약해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그 옛날 작은 부족에서는 소통이 그리 큰 사회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이 다양해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저절로 소통의 어려움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급기야 대통령 직속으로 ‘국민대통합위원회’까지 만들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성장 과정 이 시점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적극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소통이란 원래 잘 안 되는 게 정상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간과한다. 언어가 다르거나 사회 배경이 다르면 소통이 어려운 건 너무나 당연하다. 소통은 잘 되면 신기한 일이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에 있다. 말은 물론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글까지 발명하여 사용하고 사는 동물에게 소통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소통이란 안 되는 게 정상이지만 반드시 되게 해야 사회가 굴러간다. 안 되는 게 정상인 걸 되게 하려면 그만큼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솝 우화에 보면, 개미는 여름 내내 땡볕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베짱이는 나무 그늘에서 노래만 부르며 놀다가 추운 겨울이 오면 배고픔에 떨게 된다. 그러나 이솝은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 베짱이는 결코 놀지 않는다. 날씨가 추워지지 전에 암컷과 짝짓기에 성공해야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수 있다는 걸 잘 아는 베짱이 수컷은 여름 내내 그야말로 식음을 전폐하고 필사적으로 일한다. 윗날개를 거의 수직으로 치켜들고 한쪽 날개의 가장자리를 반대쪽 날개의 밑면에 대고 긁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그 자세에서 팔을 어깨 뒤로 하늘 높이 치켜든 채 두 팔을 서로 바짝 붙여 비벼보라. 그 동작이 얼마나 중노동인지 금방 느끼게 될 것이다. 그걸 여름 내내 한다고 생각해보라. 식음을 전폐하고.

이 세상의 모든 수컷들에게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스스로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방법이 없다. 반드시 암컷의 몸을 빌려야 가능하다. 그래서 수컷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암컷을 향한 번식 소통의 노력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소통이란 소통이 필요한 쪽에서 소통의 목적을 이룰 때까지 악착같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툭하면 소통이 안 되다고 하소연하는데, 그것은 소통의 근본을 모르는 처사이다. 아름다운 소통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우리 모두 수천 번이라도 설명과 설득을 반복해야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날개를 비벼대는 베짱이 수컷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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