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gulag, ‘명예롭지 못한’ 북한 수식어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북한 방문이 국제사회의 시선을 끌었다. 미국의 대북한 협상가인 빌 리처드슨?전 뉴멕시코 주지사 등이 동행한 그의 북한 행보는 의도와 성과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정보소통의 상징인 인터넷기업 대표와 가장 폐쇄적인 사회의 만남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슈미트 회장의 방북을 전한 세계 언론보도도 그런 각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슈미트 회장이 북한에 ‘강남스타일’을 들여가려 한다며 북한을 ‘핵무기 기술이 주요 수출품인 세계 최대의 강제수용소(world’s largest gulag, whose biggest export is nuclear weapons technology)’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싸이와 함께 유튜브 문화의 총아인 강남스타일 춤을 춰 화제가 된 바 있다.
‘gulag’란 옛 소련의 집단수용소를 의미하는 러시아어 두문자를 결합한 조어다. 소비에트 공산체제를 특징짓는 말로 소련공화국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소련이 사라진 요즘은 북한을 비판적으로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된다. 이 단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의 작품 <수용소 군도(The Gulag Archipelago)>(1973년)를 통해 서방세계에 알려졌다. 북한 인권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주목 받는 것이 좁은 의미의 ‘gulag’ 즉 집단수용소다.
북한에는 정치범을 수용하는 6개 관리소에 15만~20만명, 일반범을 수용하는 10개 교화소에 4만여명이 혹독한 상황 속에 수감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슈미트 회장의 방북을 전한 언론보도는 대체로 북한의 폐쇄성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몇몇 수식어를 살펴보자.
은둔국가(reclusive country 또는 hermit kingdom), 미개국가(benighted country), 지구상에서 가장 폭압적이고 괴상한 나라(most repressive and bizarre nation on the planet), 세계에서 가장 규제가 심한 인터넷 정책을 가진 나라(country, which is considered to have the world’s most restrictive Internet policies), 악명 높은 온라인 규제정책을 가진 가난한 공산독재 국가(impoverished, communist dictatorship with notoriously restrictive online policies)….
서방언론의 북한 묘사가 부정적인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나 이번엔 정보통신 쪽에 관심을 맞추다 보니 더 험악해진 듯 하다. 디지털시대에 IT강국 한국을 코 앞에 둔 북한의 정보통신은 과연 어디까지 와 있을까. 최근 미국의 정보통신 전문가인 스콧 브루스가 이스트웨스트센터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이 꽤 상세한 현황을 전하고 있다. 그는 ‘양날의 칼: 북한의 정보통신기술’이란 발표문에서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IT분야를 극도로 제한했던 정책에서 그것이 국가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 아래 IT를 도구로 이용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전했다.
휴대폰의 경우 이집트의 오라스콤과 기술협력을 통해 ‘고려링크’란 네트워크가 2008년 도입된 이래 현재 가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 휴대폰 서비스를 정부가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이용자들은 매일 선전교육 문자메시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2002년 시작된 인터넷 서비스는 대학생과 과학자, 고급관리 등 수만명만이 이용하고 있다. 인구의 약 5%만이 디지털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들 서비스 모두 북한내에서만 사용 가능한 인트라넷시스템에 국한돼 있다.
스콧 브루스는 IT기술의 도래와 함께 곧 북한정권이 붕괴하고 ‘평양의 봄’이 올 것이라는 기대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정보통신시스템의 폐쇄성과 뿌리깊은 감시시스템 등으로 인해 ‘급변사태’가 임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정보통신이 폐쇄사회의 빗장을 여는 마법의 주문이 될지는 결국 북한 지도부의 전반적 개혁개방 정책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