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징병제 폐지 ‘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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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징병제 폐지 계획이 군 입대 희망자 부족으로 주춤거리고 있다. 대만정부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2015년부터 징병제를 전면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키로 했다. 모병제는 자발적인 군인 모집을 전제로 하는데, 장기복무 지원자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인구 2300만명 대만의 현재 군 병력은 23만5000명. 대만 당국은 2015년까지 병력을 지금의 4분의 3인 17만6000명으로 줄여 전원 모병으로 채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2011년부터 자원입대자를 점차 늘리고 있다. 그런데 그 수가 목표치에 턱없이 미달이다. 2011년 목표 4000명 중 절반인 2000명만 채웠고, 지난해에는 목표 1만5000명 중 4000명 지원에 그쳤다. 징병제 폐지 계획 자체가 흔들릴 정도다.
그만큼 대만 국민들 사이에 국방·안보의식이 무뎌졌다는 뜻이다. 대만의 주적은 물론 중국이다. 대만인들은 과거에는 중국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투철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양안(兩岸)간 투자·무역·교류가 급증하면서 안보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강군 양성을 기반으로 ‘본토수복’을 외치던 시대는 지났다.
대만의 튼튼한 경제기반도 모병제 폐지의 걸림돌이다.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휘청였던 2008~2010년에도 대만 경기는 상대적으로 호조였다. 세계경제가 회복기로 접어든 지금은 경제상황이 호조를 띄고 있다. 고임금의 일자리가 많은데 처우가 열악한 직업군인의 길을 걷겠다는 젊은이가 몰려들 리 없다.
현재 모병제로 입대하는 병사들은 초봉으로 기본급 3만 대만달러(약 110만원)에 약간의 수당을 받는다. 국방 관계자들은 모병을 크게 늘리려면 군인 봉급을 대폭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인 처우를 개선하려면 국방예산을 대폭 확대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한 국방 전문가는 대만 정부가 모병 목표를 채우려면 현재 국민총생산(GDP)의 2.2%인 국방비를 3%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그러나 마잉주 총통은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국방비 삭감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고 있어 국방예산 대폭 증액은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의 <AP통신>은 최근 대만의 징병제 폐지 움직임을 집중 조명한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지금과 같은 긴밀한 관계에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것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는 거의 없으며 오히려 미국이 대만의 안보 불감증을 걱정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공격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중국은 대만통합을 포기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미사일 1500개가 160km 대만해협 너머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 안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징병제는 영어로 ‘conscription’이다. ‘conscrip’는 ‘징병하다’는 뜻의 동사나 ‘징집병’이란 명사로 두루 쓰인다. 어원은 알기 쉽다. 라틴어에서 중세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에 들어온 대표적인 단어다. ‘con’ ‘com’ ‘col’ 등은 ‘함께’, ‘script’는 ‘쓰다’는 뜻이므로 ‘함께 적어놓는다’ 즉 ‘(입대자의) 명단을 작성하다’는 의미다.
이와 똑같은 뜻의 단어가 ‘enlist’ ‘enlistment’인데, conscription’은 강제 징집의 의미가 분명한 반면 ‘enlistment’는 징집과 모병 양쪽에 다 사용된다. 미국영어에서는 ‘징병제’ 또는 ‘징집하다’는 말로 ‘draft’가 많이 쓰인다.
인류역사에서 징병제의 연원은 먼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집단과 사회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존속돼왔다. 현대적 의미의 징병제와 ‘conscription’란 말이 등장한 것은 1790년대 프랑스 혁명 때였다. 그 영향으로 19세기 들어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평시에도 일정 연령대 젊은이들에게 1~3년의 병역 의무제를 도입했다.
징병제는 냉전 종식 이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현재 대체복무, 지원자 부족시 부분 징병 등을 포함해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38개국에 이른다. 이들 중 대만,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북한, 리비아 등 10개국이 여성에게까지 징병제를 적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