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dictator’s daughter, ‘박근혜의 등장’ 바라보는 세계 언론의 시각

박근혜, 2012년 지구촌 선거퍼레이드 대미 장식

한국의 대통령선거 종료와 함께 올해 세계 주요 나라 집권자 교체 일정이 마무리됐다. 공교로운 우연이지만 한국이 지구촌 선거 퍼레이드의 대미를 장식한 모양새가 됐다. 게다가 한국은 여성 최고통치자를 탄생시켰다. 올해 잇따라 정부를 교체한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이른바 4강에서 지금껏 없었던 일이니 주목 받지 않을 수 없다.

동아시아 최초의 여성 국가수반을 바라보는 외국 언론의 시각은 어떨까. 주요 외신을 훑어보면 제목은 대체로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주류를 이뤘다. 이어 당선인을 설명하는 수식어에는 보수 집권여당 후보라는 공식 직책 외에 ‘독재자의 딸(dictator’s daughter)’이란 대목이 빠지지 않았다.

몇몇 표현을 살펴보자. 과거 독재자의 딸(ex-dictator’s daughter), 한국의 최장기 집권 독재자의 딸 (daughter of South Korea’s longest-ruling dictator, 이상 <뉴욕타임스>), 과거 독재자 박정희의 딸(daughter of former dictator Park Chung-hee, <BBC방송>), 권위주의 시대 한국의 분열적 군부 독재자의 딸(daughter of a divisive military strongman from South Korea’s authoritarian era, <AP통신>), 논란 많은 한국 독재자의 상속인(heir of a controversial South Korean autocrat, <포린 폴리시>) 냉전시대 한국 독재자의 딸(daughter of South Korea’s Cold War dictator, <글로브 & 메일>)….

‘독재자의 딸’ 꼬리표 더 붙을 일 없을 것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일찍이 선거기간 중 아시아판 커버스토리로 박근혜 후보를 다루면서 ‘독재자의 딸 (The Strongman’s Daughter)’이란 키워드를 제목으로 삼았다. 박근혜란 정치인을 잘 모르는 세계인이 그를 인지하는 정체성이 ‘독재자 박정희의 딸’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타임>의 이 제목을 놓고 새누리당이 보도자료(12월7일자)에서 ‘강력한 지도자의 딸’이라는 명백한 오역을 내밀었던 것은 ‘치졸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strongman’은 독재자를 뜻하는 일종의 완곡어법(euphemism)이다. ‘죽었다(die)’ 대신 ‘돌아가셨다(pass away)’고 에둘러 쓰는 방식이다.

독재자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가 여럿 있는데, ‘strongman’은 그 중 어감이 좀 부드러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말이다. 그렇다고 이걸 <연합뉴스>처럼 ‘실력자’로 번역하면 안 된다. 여당 후보에게 차마 ‘독재자의 딸’이란 ‘불경스러운’ 표현을 쓸 수 없어 눈 딱 감고 오역을 해버린 편집자의 충정이 애처롭다. 한국에서 번역 논란이 일어난 것을 의식한 듯 <타임>은 미주판에서 제목을 아예 ‘The Dictator’s Daughter’로 바꿔 달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지겠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고 5?16이 쿠데타임은 역사적, 세계적으로 공인된 어김없는 사실이다. 세계 언론이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전하는 첫 보도에서 ‘독재자의 딸’이란 수식어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치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단지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니므로 대부분의 언론이 속보에서부터는 그런 직접적 표현 대신 한국이 거쳐온 시대와 정치상황에 관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즉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 꼬리표가 계속 붙어 다닐 일은 없어 보인다.

국민통합 남북관계 재벌개혁서 확실한 성과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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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당선인이 ‘독재자의 딸’로 세계무대에 소개된 것은 숙명이다. 그는 “이제 아버지를 내려놓겠다”고 했으니 스스로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 나가기를 기대할 뿐이다. 박 당선인은 남다른 성장과정과 경험을 거쳤기에 다른 어떤 이가 대통령이 됐을 때보다 확실한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국민통합과 남북관계, 재벌개혁 등이 그런 분야다.

지역감정 해소, 동서 화합의 경우 박정희 시대에 씨앗이 뿌려진 문제이므로 ‘결자해지’ 차원에서 자신의 손으로 해결해나가려는 의지가 확고한 듯 하다. 남북관계의 경우 중국이 벌써부터 전향적 언급을 하고 있듯이 최고통치자의 2세라는 ‘태자당 프리미엄’이 좋든 싫든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재벌개혁 문제는 최소한 대기업과 재벌총수의 범법행위만큼은 확실하게 다뤄지지 않을까 예측된다. 박 당선인은 역대 대통령을 통틀어 재벌가와 인맥?혼맥으로 직접 얽혀 있지 않은 대통령이다. 이력과 심리상태로 따져 보면 재벌을 마음 깊은 곳부터 ‘상전’으로 인식하는 이명박 현 대통령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박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인식한 재벌은 일 잘하는 ‘머슴’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나온 뒤 그들로부터 상당한 ‘수모’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이 국정을 처리하는 데 사심이 작용해서야 안 되겠지만, 통치자의 복심이 여러 경로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현안이 이명박 대통령의 비리 처리 문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야당 후보가 당선됐을 때보다 훨씬 강도 높은 조처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하는 사람이 다수라는 정도만 밝혀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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