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gun control, 총으로 일어선 자, 총으로 망하려나?
총기규제(gun control)를 둘러싼 미국사회의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총기 규제 강화 움직임을 보이자 막강한 로비력을 자랑하는 총기협회(NRA) 등이 반격에 나섰다. 한 켠에서 총 반납 운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총기 매장에선 총?탄약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어린이 20명을 포함한 27명의 목숨을 앗아간 코네티컷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이후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다.
과연 이번에는 무고한 희생을 막을 강력한 총기 규제책이 마련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올시다’이다. 이번에도 또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 뻔하다. 무슨 근거로 장담하느냐고? 미국 역사와 사회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총기 규제는 단지 ‘이 주일의 키워드’가 아니라 ‘300년 미국역사의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대형 총기 사건 이후 한동안 총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은 규제 강화를 우려하는 사재기 현상 탓이다. 이번에는 특히 범인 애덤 랜자가 사용했던 AR-15형 소총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자칭 ‘세계 최대 총기생산사’인 브라우넬스는 AR-15 총과 탄창이 사건 이후 3일간 평소 3년치가 팔려나갔다고 밝혔다. 한 총기판매업자는 “(공격용 무기 소유 금지법안을 발의한 민주당의) 페인스타인 상원의원과 오바마 대통령에게 ‘올해의 세일즈맨 상’을 주고 싶다”고 했다.
총기 보유에는 개인이 자기방어를 하려는 호신 욕구도 작용한다. 총기협회는 “총 가진 악당들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총을 가진 좋은 사람”이라며 그 당위성을 강변했다. 총기 보유 찬성론자들은 모든 학교에 무장요원을 배치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해 많은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 애리조나 투산 총기난사 사건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연방판사를 포함한 6명이 숨진 현장으로 달려간 오바마 대통령의 비장한 연설에 아랑곳없이 전국 총 가게 매출이 치솟았고, 일주일 뒤 투산에서 열리기로 한 총기 박람회는 예정대로 성황리에 개최됐다.
사실 다른 나라, 특히 총기 사용이 극히 제한적인 동양권에서 바라볼 때 미국의 유별난 ‘총 문화’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총기 사건에도 불구하고 총기 판매와 보유, 소지에 관한 규제는 매우 소극적이다.?총기 규제가 느슨한 것이 업계와 이익단체의 압력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총에 대한 미국인의 집착은 놀랄만하다. 총기 보유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다수의 미국인이다.
소수인종보다 백인, 진보보다 보수, 여성보다 남성, 대도시보다 중소도시와 시골 사람에게 이런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총기 규제는 낙태(abortion), 동성연애(gay rights) 등과 함께 미국인의 이념적 스펙트럼, 아니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키워드이다.
과연 미국에 얼마나 많은 총이 있을까. 미국 법무부 추산에 따르면 무려 2억7500만 정에 이른다. 미국 인구에 육박하는 수치다. 일반인의 총기 보유 실태는 정확한 집계가 없으나 설문조사와 총기판매량 등을 근거로 대략 전체 가구의 40~45%가 총을 보유하고 있다고 본다.
미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08년 전국에서 살해된 1만6702명 중 67%가 총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 무기 중 4분의 3은 권총이다. 총을 사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한 해 1만8000명에 이른다. 총의 해악이 이처럼 명백하다면 민간인의 총기 보유를 금지하면 되겠지만 그게 간단치 않다. 보유 금지는커녕 총기 관련규제를 조금이라도 강화하려 하면 반대여론이 조성된다. 많은 정치인이 신념에 따라, 혹은 표를 얻기 위해 동조하고, 보수 성향이 강한 사법부도 이에 호응하는 판결을 내리곤 한다.
총기 관련규정은 주마다 다르다. 애리조나, 버몬트, 알래스카 등이 규제가 느슨한 대표적인 주다. 애리조나에선 가게에 들어가 총을 사서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슈퍼마켓에서 우유 한 팩 사 갖고 나오는 시간보다 5분쯤 더 걸린다고 한다. 우유를 살 때 없는 신상확인 절차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신상 확인은 강력범 전과와 정신 병력 유무를 연방정부의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하는 절차로 전화 또는 온라인으로 이뤄진다.
미국의 관용적인 총기 문화는 유럽인이 신대륙을 개척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러드 다이어몬드가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에서 갈파했듯이 백인들은 총을 앞세워 신대륙을 ‘평정’해 나갔다.
그런 상황이 훗날 미국 헌법에 반영됐다. ‘권리장전’이라 일컫는 헌법개정 10개 조항 중 건국 당시 중요한 제도였던 민병대(militia)의 역할을 규정하면서 민간인이 무장할 권리를 명시한 아래 조항이다.
“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기강이 잡힌 민병대가 자유로운 주(州)의 안보에 필수적인 상황에서, 시민이 무기를 보유?휴대할 권리를 침해 받아서는 안 된다)”
민간인의 총기 소유 근거로 여겨지는 이 조항을 놓고 미국 조야에선 오랜 논쟁이 벌어져 왔다. 2007년 CNN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5%는 헌법상 총기 보유권이 보장돼 있다고 답했다. 문제의 조항은 과거 민병대에 관한 것이므로 현재의 민간인까지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연방대법원은 이 조항이 민병대 아닌 일반인에게도 총기 보유권을 부여한다고 판결했다. 그렇지만 각 주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존의 총기 관련 각종 규제가 위헌은 아니라는 다분히 정략적인 절충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코네티컷 사건 이후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총기 규제 강화에 대해 44%가 찬성, 32%가 반대의견을 나타냈다. 미국의 총기 관련 범죄는 그 빈도나 강도가 사회의 안위를 위협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총으로 일어선 미국 문명이 총으로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높아지고 있다. 지리한 법리 논쟁과 세력 다툼에 매몰돼온 미국 입법?행정?사법 지도층은 과연 미국을 어디로 이끌고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