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①] 아흔살 청년 박상설 “주말마다 떠난다, 끝없는 자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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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골에서 띄우는 편지

습관을 다스리지 않으면 습관이 사람을 지배한다. 외부의 적은 물리치기 쉬워도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때때로 죽음을 생각하고 그 위에 삶을 설계한다. 나무는 햇빛과 비와 바람이 최고의 영양소다. 인생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사과 씨는 헤아려볼 수 있으나 씨 속의 사과는 자연만 안다. 생명은 자연에 맡겨져 있고, 그래서 사람은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

아흔살 깐돌이 내 모습

내가 혼자 산다는 것을 남들이 알고 제일 궁금해 하는 것은 식사와 빨래 등 살림문제다. 아흔 나이에 어떻게 혼자 사세요? 그럼 식사는요? 외롭지 않으세요? 날은 추워지는데 병이라도 나면 어쩌시려고요? 자식 며느리는요? 누구든 이렇게 묻는다.

때로는 밥보다는 반찬과 살림에 따른 오만 것들을 더 걱정한다. 그럼 나는 한술 더 떠, 이 나이에도 산에 가고 캠핑여행도 자주하고 정기적으로 농장에 들러 농사일 하고 일손이 부족한 농가의 밭에 가서 호미질로 봉사한다고 기염을 토한다. 늘 책을 뒤적이며 젊은이들과 e-mail을 주고받고 밤에는 이슬에 젖는 침묵을 느낀다. 나의 마지막 길 위에서 세상을 향해 차갑게 그리고 나 자신의 영혼을 호되게 훑어 <아시아엔>의 기자로 독자들에게 “맞는 말인데 맞으면 아픈 상처를 치유해주는” 글을 안겨주고 싶다고 지나가듯 한마디 던져본다. 허나 내 말은 소귀에 경 읽기로 허수히 흝어보며 “그래도 그렇지요?” 하며 내김을 뺀다.

더 파고드는 사람에게는 한방에 날려 보내려고 겨울 눈 속 영하 15도 숲에서 “북국 곰 캠핑을 한다”고 또 기세를 토한다. 그러면 “추운 겨울에 동사하려고 눈 위에서 자느냐?”며 감탄이 아니라 비웃곤 한다. 그들과 나와는 딴 세상에 있다. 밥하고 집안 일하는 것은 누구나 해야 하는 기본일 뿐인데 사람들은 세상을 거꾸로 산다. 나는 나의 삶을 타인과 구분 짓는 ‘냉소의 칼’을 사랑한다. 뒤틀린 문명과 겨누는 전쟁이 나에게 남은 최후의 자랑거리임은 나는 잘 안다.

이럴 때 나는 치옹(痴翁)의 한마디를 떠올린다. “늙어서 젊은이와 거리가 생기는 것은 세대 차이가 아니라 늙기 전에 자기를 잃음이다.

문화 해석을 통해 나를 본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던 문화 속에서 태어났다. 그럼으로 그 문화의 언어·습성 등 총체적 삶의 역사가 개인이 태어난 순간부터 그 문화와 인습과 전통에 구속되어 그에 따른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사람이 사는 법도라 하며 맹목적으로 순종하고 그렇지 않는 사람과 구별 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원래 인간에게는 즐거운 날보다는 괴롭고 어려운 날이 더 많으며 혹시 행복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행복은 누릴 겨를 없이 쏜살같이 사라진다. 그래 즐거움을 찾기보다 고통을 덜어내는 메커니즘이 희망이다. 나는 문화결정론(文化決定論)을 내세워 인습은 움직일 수 없는 법도라고 고집하는 문화해석에 회의를 갖는다. 수많은 날을 살아온 나는 지금 이 글을 통해 ‘생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문화 통정성(統整性)의 고뇌’를 고백하려 한다.

여러 세대를 이어온 관행을 사람들이 의심 없이 믿고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그에 따르는 집단 심리증후를 부정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관습과 전통이 진리의 기초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예를 들어 원시부족이나 옛 사람들의 매우 잘못된 관습과 불합리한 전통 그리고 미신도 수천 년에 걸쳐 그 오류가 개선되어 왔고 그 결과물이 현재의 문화다.

물질 만능을 포함한 겉모양의 문화 유행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쉽사리 동화된다. 그러나 관행이나 전통같은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가 주관하는 가치여서 행동의 변화로 이끌어 내기 위하여는 강도 높은 훈련이 별도로 필요하다. 모든 것은 행동의 문제다. 사람은 백년 이백년을 살 수 없으니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시간을 초월한 앞서가는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우리 전통문화의 장점과 통섭하자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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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은 전업주부

나는 30년간을 밥과 반찬을 손수 하며 홀로서기 노인의 ‘즐거운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부엌데기는 누구나 싫어하지만 나는 그게 좋다. 살림은 지식 아닌 지혜의 원천이 숨어있다. 지혜의 오묘함은 해본 사람 아니면 알 수 없다. 그렇게 귀한 것이다. 우리 주부들은 위대한 독립적 생산자(Independence producer)다. 나는 일찌기 노년의 부엌데기에 낀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 내 생애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혼자 사는 살림꾼’이 된 것이다.

생활에 쏟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가족이 야외활동과 공부와 일에 전념하도록 자기 몸을 던져 희생하는 전문가가 바로 주부들이다. 인간의 절대요건은 자유다. 자유의 필수조건은 자립이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생산수단까지 갖춘 홀로서기의 ‘독립적 생산자’이어야 한다. 돈도 쓸 만큼 벌어 레저문화생활을 즐기며 최소한의 품위는 유지하여야한다. 자녀에게 절대로 기대지도 말고 또 자녀에게 주지도 말고 맑은 절제로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근간에 자주 보도되는 사회의 부조리는 내 가족만이 제일이라는 전근대적인 혈연주의와 학교·고향 등 온갖 연고에서 발생한 반사회적 샤머니즘의 잔재다.

우리는 인간을 얼마나 아나?

오늘날 교육부재의 혼란은 사회의 멘토이어야 할 사회지도자와 노인·부모·선생님들이 자녀의 거울역할을 못한 까닭에서다. 교육은 시키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자가 하는 것인데, 이것은 어른이 시켜서가 아니라 어른 각자가 가정에서부터 ‘부엌데기’ 모범을 보였어야 했다. 잔소리가 길어 졌지만 모든 남자들이여!! 오늘부터 “건강가족 가사일 같이하기”로 남자들이 앞치마를 두르자. 이렇게 하면 자녀교육은 저절로 되고 가족은 서로 살가운 정을 느낄 것이다. 남편은 미처 몰랐던 부인의 투정을 이해하게 되고 남편의 주름진 그늘이 식탁 등불에 얼룩질 때 부인은 언뜻 한 인간이며 한 가정을 책임진 경외심으로 찡할 것이다. 모두는 내 삶의 주인으로 거듭나 화평한 가족으로 몸과 마음을 살리자. 겉치레를 버리고 삶과 직접 접촉하는 길을 향하여 우리 모두는 월드비전 사람이 되자.

오토캠핑과 무한자유?

나는 늙어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나의 힘이 닿지 않는 광막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가끔 작은 텐트 안에 우주를 품는다. 고요하고 어슴푸레한 이 작은 공간에 들면 애수어린 슬픈 음률이 가슴을 적시며 작은 것에 흐뭇해진다. 피할 수 없는 가난 그 가난마저 두렵지 않다. 그 가난의 센티멘털한 비애에 매료된다. 서릿발 같은 나의 이성도 녹아 격류에서 호수로 흐른다. 세속과 영영 멀어진다. 산다는 것은 만들어진다는 것을 더욱더 느끼면서 말이다.

나는 오토캠핑에 중독되었다. 나는 곧잘 이렇게 독백한다. 불꽃처럼 살다 가자고….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얼마까지 살아야 만족해 할까? 오래 사는 것이 문제인가?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가?

노년을 이겨내야 전부를 이기는 것이다. 후반전에 이겨야 진짜 이기는 것이다. 늙은 지금이 제일 젊다. 제일 젊은 지금 움직여야 산다. 왜 오토캠핑인가? 안락한 집을 떠나 우리는 왜 오토캠핑을 하는가?

그것은 총체적 삶을 위한 참된 즐거움이 대답으로 들려줄 것이다.

내가 자연과, 생활과, 내 안의 건강한 주인됨을 되찾기 위해선 진지한 처방이 필요하다. 나는 이런 고민을 일거에 날릴 수 있는 노하우를 자연에서 찾았다. 나는 젊어서부터 캠핑 생활을 즐기는 가운데 사람의 마음이 자연에서 순화되고 차유된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론 이룰 수 없는 자연의 힘이다. 그 힘을 발견하는 가장 멋스럽고 효율적인 방법이 오토캠핑이다. 나는 마니아들과 오랜 동안 오토캠핑을 통해 여행·오지탐험·등산을 해오며, 그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지도하여왔다.

그런데 2003년 5월 한국최초의 전국오토캠핑대회가 개최 되었고, 그 후 매월 정기적으로 오토캠핑 이벤트가 열렸다. 나는 이 프로젝트의 산파역을 맡아 대회의 지도강사로 활동하며 젊은이들에게 인성교육과 “건강가족” “결혼 경제 워크숍” “인생설계” “야외 활동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여가학” “감수성 훈련”등의 강좌를 해왔다. 한일교류 오토캠핑대회로 일본에도 일행을 이끌고 대표로 참가하여 기술개발과 아웃도어 발전에 관여했다. 오토캠핑은 움직이는 콘도로 오토캠핑을 통하여 특히 남성들에게 요리강습을 지도하여 집에서도 남자들이 요리를 통해 열린 가정 분위를 연출하게 하는 감성교육에 힘써왔다.

“이제는 떠나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고통을 겪는데 그것이 어디로부터 왔는가? 사는 방법이 잘못된 데서 오는 수가 많다. 그동안의 삶이 존재적이었다면 이제는 그 존재를 뛰어넘어 만들어내 사는 쪽, 즉 생성(生成, Becoming)으로 나가야 되지 않겠는가? 캠핑은 즐거운 소꿉놀이인 동시에 마음을 순화시키고 삶을 담금질하는 행동문화다.

도시인들은 너무나 인공 터전에 갇혀 편안한 생활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농장이 있는 강원도 오대산 북쪽 한강발원지 계방천 오지에 1~2m 안팎의 눈이 내릴 때마다 몇 번이고 미친 듯이 그곳에 달려간다.

그 순수하고 신비로운 눈 나라에 들어서기 위한 무기는 나의 의지와 자연을 흠모하는 애정 뿐이다. 눈길이 무섭지 않은 것처럼 추위가 겁나지 않는다. 눈더미를 헤치고 텐트를 설치하여 호롱불빛 아래 고독을 즐기는 자유란…. 내 생애 이런 밤이 있기에 이 밤은 평생을 살아낸 하룻밤같이 절실하게 느끼는 밤이다. 가족들이 이런 모험 캠핑을 자주 경험해야 세계인으로 탈바꿈된다. 군부대에서도 국민행복 프로젝트로 군 가족과 같이하는 캠프를 펼치는 유연한 추진이 있기를 바란다. 드높은 창공과 숲속에서 자연의 사치를 마음껏 꿈꾸며 사는 것,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몇 번을 산에 갔느냐가 경쟁의 기준은 아니지만 나는 평생을 통해 천번 정도는 산에 올랐다. 등산 때문에 시간을 빼앗겨 일이 소홀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등산에 의해 활력을 얻어 일의 능률이 오르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하였다. 이 나이에도 요즘 한달에 서너 번은 꼭 산에 간다. 심지어는 지금부터 72년 전 나이 17살 때인 일제 강점기 여름방학을 이용해 미숫가루만 메고 나 혼자 해금강에서 내금강까지 1주일간 금강산을 방랑했다.

그때는 경성역(지금의 서울역)에서 경원선 기차를 타고 철원~평강~상방~안변~통천~고성(옛 고성)역에 내려 그곳에서 걷기 시작하는 그야말로 구름안개 헤치고 산마루로 헤매는 원시의 걷기였다. 지금 글을 쓰는 동안에도 옛 회상은 아롱이고 할 이야기는 넘쳐나 난감할 따름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 말 묻을 수도 없고 아무 말 들을 수도 없는 이 비경에서. 그저 새소리 계곡 물소리 바람소리 나의 발자국소리… 단지 바라만 본 산길이다.

나의 산행, 나의 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냥 좋고 산이 좋아 혼자 간다. 가는 산마다 좋았지만 자연은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 어제도 산에 갔다. 그 시간 헛되이 보내지 않은 기쁨, 무엇으로 살 수 있단 말인가. 지난날의 즐거운 회상과 미래의 아름다운 희망은 언제나 산에 있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여백(餘白)의 시간이 산에 흐른다. 상업주의 거품과 포퓰리즘에 물들지 않게 하고 조악하고 이상스런 현혹에서 구해주는 산과 텐트와 농장을 나는 사랑한다. 인적 그친 골자기에 물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 세상 사람과 나와 다르다는 것에 감사한다.

오대산 600고지 주말농장 이야기

이제 산타령은 고만하고 주말농장 이야기로 돌아가자.

농장은 오대산 북쪽 한강발원지 샘골이라는 곳에 있다. 항상 맑은 계곡 물이 흐르는 해발 600m의 고랭 오지다. 농가 한 채 없는 계곡 따라 깊게 들어앉은 숲이다. 이곳에 나를 돌아보고 나를 찾는 ‘고랭지 야생캠프’ 농장을 가평에서 시작하여 50년간 이어왔다.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오직 자연 속에서 또 다른 레저문화를 꿈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캠핑장이다. 오토캠핑으로 시작하는 농원으로 농사일과 산에 가는 전진기지로 이용하는 산속 워크숍 캠핑장이다. 건물은 의도적으로 짓지 않고 비닐하우스 한 채만 지어 텐트생활을 한다. 이 캠프는 마니아를 위한 비영리 자연의숲학교 개념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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