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일본군 만행 흉내내는 군대폭력
19세기까지도 영국 해군에는 사관학교 건물이 없었다. 교육·훈련 몫으로 지정된 함선 자체가 사관학교였다. 수병들 먹을 물이 없더라도 사관이 세수할 물은 있어야 했다. 사관의 권위는 이만큼 절대적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사관이 돛을 내리라고 하면 몸이 부서지더라도 그 명령을 이행해야 되는 것이 선원이고 해군이기 때문이다. 영국 함선을 방문해보면 사관이 식사하는 동안 수병이 열중쉬어 자세로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사관의 시중을 든다. 선진국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멋과 맛도 필요하지 않을까?
일본군은 병사를 야차와 같은 짐승이 되도록 길렀다. 중국에서 일본군이 약진(躍進)할 때 병사들 사이에 중국 농민 목 베기 경쟁이 벌어졌다. 아베 오장은 중국인 123명의 목을 잘랐고, 아소 상등병은 이를 넘어 124명 참수기록을 달성했고…. 이것이 당시 온 일본의 화제였다. 이것은 일본이 지난 1백년 동안 한국, 만주, 중국에서 저지른 짓이다. 이런 군대는 본받아서는 안 된다. 최근의 군대폭력은 이런 못된 것을 흉내 내는 것이다. 절대로 안 될 일이다.
독일군에서는 병사의 넥타이가 틀어져 있을 때에 장교가 손으로 직접 바로 잡아주지 않는다. 넥타이는 복장의 일부분이고 복장은 인격의 연장이다. 따라서 넥타이에 손을 대는 것은 몸에 손을 대는 것과 같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아빠가 몸에 손을 대어 바로잡아주면 “내가 할 수 있는데 왜 아빠가 손을 대?”라고 바로 짜증을 부릴 것이다.
우리의 아들, 손자 세대는 이렇게 자라온 세대이다.
장교들이 병사의 넥타이에도 손을 대지 않는 만큼 인격을 존중하는 군대, 이것이 독일군대다. 독일이 새로운 군대를 건설하는 데 있어 중심요소로 도입한 내적지휘는 상호간의 인격존중과 소통을 통한 정신적 고양을 기하는 통솔을 강조한다. 또 하나 독일 군대의 전통이요 강점인 임무형 전술은 프러시아군 이래의 전통이다. 장교는 ‘무엇을’ 하라는 명령만 받지 ‘어떻게’ 하라는 명령은 받지 않는다 ‘어떻게’는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다. 독일군에서 또 주목할 것은 명령에 대한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합법적이고 가능한 명령에만 복종하여야 하며 비합법적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 가능하지 않은 명령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찬란한 전통을 가진 독일군 참모본부가 총통 히틀러에게 무조건 따르다보니 참담한 패전으로 가는 결과를 낳았다는 통절한 반성의 결과다.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쉬타우벤베르크 대령은 독일군의 정신적 지표가 되었다. 장교들은 임관 전 이들이 총살당한 지역, 성역화한 지역을 방문한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군이 마사다에 서서 다시는 조국을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는 것과 같다.
군대에 각종 폭력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반영함에 다름 아니다. 허나 우선 군대만이라도 보다 고급스러워져야 하겠다. 우리 군이 배워야 할 것은 이러한 독일군이다. 생도시절부터 독일군 전통과 교육, 훈련, 지휘방식에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은 독일 육사 출신 장교들이 우리 군의 귀중한 자산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전방부대에서의 폭력은 문명국 군대로 가기 위한 마지막 진통이어야 한다. 감히 창조국방 기치 아래 ‘새로운 군대’를 창조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군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