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돈 칼럼] 핵보다 진짜 ‘위협’은 화학무기…미국 등 강대국 논리 무작정 좇는건 ‘위험’
[아시아엔=민병돈 전 육사교장] 지난 1월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따른 여러 나라의 반응은 우려와 비난 일색이다. 미국은 이에 더해 구체적 제재에 나서고 있다. 우리는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어 모두 한 목소리로 북한을 비난할 뿐 유효한 대책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안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북한의 무기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북핵 보도만 쏟아내고 있다. 우리에게 치명적 위협이 되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화학무기다. 만약 북한이 한국을 침공한다면 핵무기 대신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충분한 양의 화학무기와 항공기, 유도탄, 장사정포 등 투발수단도 갖추고 있다. 핵은 원자탄이든 수소탄이든 한반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다.
핵무기는 열, 폭풍, 방사능 등 3가지 효과가 있다. 이 3가지 효과 중에서도 방사능효과는 장기간 지속돼, 잔류방사능 오염지역에서는 오랫동안 군부대의 점령(주둔)이나 주민 거주가 불가능하다.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미군의 원자폭탄이 투발된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방사능에 오염된) 원자병 환자가 많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후 한국전쟁, 중동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 핵폭탄은 사용되지 않았다. ‘가난한 자의 핵무기’라고 일컬어지는 화학무기는 다르다. 북한이 이미 반세기 전부터 제작·보유한 화학탄은 공격 측에는 매력있는(?) 무기다. 값싸고 제작하기 쉬운데 비해 효과가 엄청나게 크다. 화학무기 살상효과는 핵무기 못지않다. 더 큰 효과는 적을 심리적 공황(psychological panic)상태에 빠뜨릴 수 있다. 전장의 전투원들은, 적탄이 날아오는데 적은 보이지 않을 때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군인들이 주간전투보다 야간전투를 싫어하는 이유다. 독가스는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만 죽일 뿐이다. 적은 보이지 않는데 전우들이 목을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죽어갈 때 심리적 공황은 해소할 길이 없다. 이쯤 되면 싸움을 포기하고 패전이 된다. 그런데 시간(몇 시간 또는 며칠)이 지나면 오염지역은 해독되고 건물과 무기 및 장비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또한 화학무기의 이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협정에도 불구하고 화학무기를 사용한 측은 규탄을 받을 뿐 응징당한 예가 없다. 대다수 강대국들은 과거 화학무기 사용 전과(前過)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북한의 핵실험 후 미국은 북한 핵실험을 규탄할 뿐 북한의 화학무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화학무기로는 미국을 공격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현실에서 무엇보다 ‘위협인식’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미국 등 강대국 판단과 논리에 그대로 따르기보다 북한과 우리의 능력과 강·약점을 냉철하게 판단,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번 북핵 실험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온 나라가 북핵 문제에만 경도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이미 반세기 전부터 힘들여 구비한 화학전 능력으로 보아 실전에서 핵무기보다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화학무기에 대한 대비책이 더 긴요하고 시급하다. 그리고 북의 핵무기 문제는 미국이 해결하도록 그냥 맡겨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현명한 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