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돈 대기자 칼럼] 팔순 노병의 ‘2016 가을 끝자락에 서서’
[아시아엔=민병돈 <아시아엔> 대기자, 전 육사교장·전 특전사령관] 10월이다! 마침내 그 지겹던 더위가 물러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어느새 가을을 느끼게 된다. 교외로 나가면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가을이 왔음을 알겠다. ‘교외의 하늘’은 맑고 푸르고 신선한 공기가 피부에 와닿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선인들은 10월을 상(上)달이라 하고,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찬탄하며 사계절 중 으뜸으로 꼽았다. 지난 추석연휴(9월14~16일) 사흘 동안 낮 최고기온이 28~29도로 여름날씨를 방불케 했다. 달력을 기준으로 하면 분명 가을일 터인데도···. 그 이전 달인 8월23일(음력 7월21일)은 “가을이 시작된다”는 처서(處暑)였음에도 낮 최고기온이 36도를 웃돌았다. 9월인데도 가을을 느끼지 못했다. 말 그대로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였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우리 선인들이 기준으로 삼았던 달력(태음력)의 24절기가 중국 것을 그대로 베껴온 것으로, 중국 대륙의 기후 및 절기와 한반도의 그것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한가위(추석)는 가을 명절이지만 날씨(기온)는 가을보다는 여름에 더 가까울 때가 많다. 또 예를 들어 우리의 설날(음력 정월 초하루)은 한겨울에 있는데 중국 사람들은 이를 춘절(春節)이라 하며 봄의 명절로 즐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가위 때 가을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전통을 지키려는 억지 연출이라는 느낌도 든다. 사실은 10월이 되어야 가을이 온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흔히 가을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피부로 느끼는 기상과 기후의 상쾌함만이 아니라 이 계절의 풍요로움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한가위에 사과·배·밤 등을 차례(茶禮) 상에 올리고 그것들을 먹는데, 그것은 덜 익은 풋과일일 뿐이다.
그와 함께 햅쌀밥을 차례상에 올리는데 그것 또한 보통품종보다 일찍 수확할 수 있는 ‘올벼’로 지은 것이다. 지난날 어려웠던 시절 이런 것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한가위 때는 즐겁고 행복했다. 그래서 “일년 열두달,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라는 말이 전해오는 것이리라···.
근래 생활터전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우리는 부족함을 모르고 풍요를 누리며 살고 있다. 시장이나 수퍼마켓에 가면 계절에 관계없이 한겨울에도 봄채소, 여름과일, 그리고 가을곡식 등 없는 것이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빠르게 과학화·정보화하면서 꼭 시장이나 수퍼에 가지 않고도 ‘찌라시’(광고전단지의 일본말)나 TV광고를 보고 주문만 하면 지체없이 배달된다. 참으로 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렇게도 편하고 풍요로운 세상에 살면서도 별로 만족이나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욕구(欲求, Needs)들을 완전히 충족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째서 욕구는 완전한 충족이 안 되는가? 그 원인은 ‘욕구의 팽창’에 있다.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도 그 욕구는 팽창하여 더 큰 욕구를 일으킨다. 이에 따라 늘어난 욕구를 다시 채워주면 그 욕구는 또 계속해서 늘어난다. 하지만 끝없이 팽창하는 욕구를 계속해서 충족시켜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욕구를 상당히 축소·억제·조절하는 게 필요하다. 최고를 지향하고 최선만을 추구하며 불만 속에서 지내기보다는 차선(次善)에 만족하는 현명함이 행복감을 더 느끼게 할 것이다. 인간에게 최선의 결과란 없다. 내면의 욕구를 조절하자. 현실 속에서는 “차선이 최선이다!” 10월 상달에 우리 모두 차선의 행복을 누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