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돈 칼럼] 6·25전쟁 흥남철수 바로 그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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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투에…

[아시아엔=민병돈 <아시아엔> 대기자, 전 육사교장] 1950년 북한의 6·25 남침으로 우리 영토의 대부분을 빼앗겼던 국군이 미군과 함께 그해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시작으로 반격을 개시했다. 일사천리로 북진, 한만(韓滿) 국경 가까이에 도달했을 때 돌연 중공군(中共軍)의 개입으로 국군과 미군은 고전 끝에 철수작전으로 전환해야만 했다. 중국과의 지정학적 악연이 조국통일의 기회를 무산시킨 것이다.

흥남철수작전은 동부전선의 미 제1해병사단이 11월27일 장진호(개마고원)에서 중공군 7개 사단의 포위공격을 받아 악전고투하며 탈출에 성공한 후의 국군과 미군병력 10만5000명의 흥남항을 통한 대규모 해상철수작전이었다. 이는 국군과 미군부대들이 그들을 따라 피난길에 나선 10만 여명의 민간인(피난민)을 흥남항 부둣가에 그대로 버려둘 수 없었던 매우 절박한 상화에서의 작전이었다. 이에 더하여 35만톤이나 되는 막대한 미군 군수물자의 처리도 철수부대(미 제10군단)의 힘겨운 과제였다.

원래 국군 제1군단과 미 제10군단은 11월27일 아침 8시에 공격을 개시해 장진호를 점령하고 두만강까지 진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장진호에 진출한 미 제1해병사단이 중공군의 저항에 부딪쳤다. 한만국경(두만강)을 은밀히 건너와 장진호 일대에 배치돼 있던 중공군 부대들 중 4개 사단의 정면 공격을 받은 것이다. 동부전선의 중공군은 장진호 일대에서 7개 사단병력으로 미 제1해병사단을 포위 섬멸하고 그 여세로 흥남항을 점령하여 동부전선의 국군과 미군을 섬멸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국군과 미군부대들은 중공군 대부대의 포위망과 영하 25~30도의 혹한과 눈보라 속에서 악전고투하는 가운데 사당장 스미스 소장의 탁월한 지휘로 미 제1해병사단이 그 후방의 흥남을 향한 ‘새로운 방향으로의 공격’ 즉 적 포위망으로부터의 탈출에 성공함으로써 동부전선의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수도사단과 제3사단 등)의 10만5000여명이 미 공군기들의 항공폭격과 미 제7함대의 함포사격 지원하에 함경북도의 길고도 험준한 계곡을 통하여, 엄동설한 속의 장거리 강행군으로 흥남항에 집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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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곧 대병력의 해상철수가 시작되는데 또 하나의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이다. 대부대 해상철수에 필요한 수송선의 태부족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국군과 미군을 따라 고향을 떠나 남행길에 나선 10만의 민간 피난민과 35만톤의 미군 군수물자가 집결해 있었다.

여기서 외면할 수 없는 인도주의 문제가 한미 군지휘관들에게 어려움을 더해 주었다. 선량한 우리 피난민을 독이 오른 적에게 내어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이에 제1군단장 김백일 장군은 “우리는 적과 싸우며 걸어서 남으로 철수할 테니 피난민들을 모두 배에 태워달라”고 미 제1군단장 아몬드 장군에게 간청했고 통역과 현봉학(玄鳳學) 박사도 피난민 한 사람이라도 더 배에 태워달라고 애원했다. 이렇게 해서 철수를 위해 지원된 선박 125척에 정원의 몇 배나 되는 피난민이 태워졌다. 12월23일 마지막 한 척인 7600톤급 ‘매러디스 빅토리호’ 레너드 라루 선장의 지시로 모든 화물을 바다에 버리고 피난민들을 태웠다.

피난 짐보따리도 없이 맨몸으로 동해안 묵호항과 부산, 거제 등지로 실려온 피난민들은 고생스러운 피난살이를 하며 살아남아 대다수는 저 세상 사람이 됐고 남은 이는 경제대국이 된 대한민국의 풍요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의 북한 탈출부터 남한 정착에 이르는 한 많은 세월의,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남과 성취 그리고 삶의 보람 등은 여러 편의 소설과 드라마 그리고 영화의 소재가 됐다.

흥남철수 후에 유행했던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투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로 시작되는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는 그때 참상을 기억하는 많은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다.

이 노래는 제3절에서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되면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로 끝난다. 노랫만에 사람들의 절실한 통일염원이 물씬 풍긴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이 불후의 명언임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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