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에 다시 생각한다①] 민주화와 산업화, 그리고 문과 무

건군 제69주년 국군의 날 행사가 열린 28일 오전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특전사 대원들이 특공무술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일제시대에는 사범학교가 최고였다. 명치유신 이래 일본은 사관학교와 사범학교에 전심·전력했다. 조선 식민지 통치에서 일본 말을 가르칠 선생을 배출하려고 사범학교가 필요했다.

박정희는 사범학교와 사관학교를 나온 준재(俊才)였다. 일반인은 상업학교를 나와 은행에 취직하는 것이 대망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세 대통령이 상업학교 출신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광복 후 국민이 그나마 직장을 갖게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 이후이다.

대일 청구권 자금과 월남파병을 바탕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진 덕이다. 보수로는 직장 가운데 은행이 높았다. 일반 직장의 2배였다. 다시 한국은행은 시중은행의 2배였다. 봉급은 물론 각종 수당과 보너스가 넘쳐나 보통 직장의 배의 배 즉, 네배라고 보면 된다. 이처럼 한국은행은 ‘꿈의 직장’이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금융감독원의 부패가 도를 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금감원은 은행, 증권, 보험 감독원을 통합하여 설립되었다. 기업과 관련되는 것을 통괄, 제왕적 권력을 누린다고 보는 것이 과언이 아니어서, 검찰이 무소불위인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금감원은 ‘신의 직장’으로 불린다. 감사원이 이런 금융감독원을 감사할 수 있으니 감사원의 권력은 그 이상이다. 감사원은 누가 감독할 것인가? 법적으로는 국회다. 감사원을 정부에 두지 않고 미국과 같이 국회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감사원은 제3공화국 이래 심계원(審計院)과 감찰위원회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는데, 박정희가 법무참모였던 이석재를 초대 감사원장에 기용한데서 보듯 감사원 인사는 각별히 신경을 썼다. 통치술에 있어 박정희를 많이 닮고자 했던 전두환도 마찬가지다.

전두환이 노태우의 6·29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면 민병돈 장군(육사 15기)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게 된다. 민주화는 김영삼에서 결정적인 계기를 맞았다. 하나회 숙정과 금융실명제 도입,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등은 어느 정권도 엄두도 내기 어려울 혁명이었다. 그러나 노태우가 발탁한 김학준, 이수정, 최병렬 등 서울대가 배출한 인재와 육사가 배출한 장군들이 합쳐 민주화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숨겨진 진실을 잊어서도 안 된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다. 국가발전에 있어서는 文武가 합쳐야 한다.

통치자는 눈과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 중국에서는 청의 강희, 옹정, 건륭 치세를 최고로 친다. 그는 직접 기른 시동을 내려 보내 지방관을 감시하게 했다. 이들은 황제에 直報 했다. 옹정제는 보고서 하나하나를 확인해서 통치에 반영했다. 세종 옹정제는 우리 세종대왕과 같이 누구보다 부지런했다.

박정희의 통치도 이와 같이 정교했다. 왕조시대에 측근을 조아(爪牙)라고 하였다. 최순실 사건에서 보듯이 박근혜는 손톱과 어금니가 문드러진 것을 몰랐으니 통치로서는 최악이었다.

“이게 나라냐?” 촛불의 외침은 이 하나로 집약된다. 박근혜가 헌법재판소에서 전원일치로 탄핵 받은 것은 이것을 반영한다.

자본주의의 아성이 되어야 할 금감원이 무너지는 것을 충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역사에 단절과 비약은 없다는 것을 명제로 삼아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兒孩들의 변증법이다. 이래서는 발전적 綜合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민주화와 경제 선진화로 나아간 과정을 모두 찬찬히 살펴 그 교훈을 절실히 반영해야 한다. 각자의 역할과 공과를 정확히 살펴야 한다.

역사에 단절은 없다. 오늘은 10월 1일 국군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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