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국군의날 변경 추진 ‘유감’

국군의 날 기념 퍼레이드 <사진=뉴시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주로 이끈 분은 석오 이동녕이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지만, 구미위원부를 중심으로 한 외교활동에 치중하였고 거의 임정을 떠나 있었다. 윤봉길, 이봉창 의사 의거를 주도하는 등 임정 주석으로 주로 기억되는 분은 김구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네 차례에 걸쳐 임정 주석을 지낸 ‘임정의 수호자’ 이동녕을 빼고서는 임정은 설명할 수 없다.

이동녕은 이회영 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강습소를 만들었는데 후에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여 청산리 대첩을 이끌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동녕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회영은 한국에서 내세울 만한 노블레즈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칭송되지만, 이동녕은 광복회에서도 별로 언급되지 않는다. 이동녕의 출생지인 천안에서 겨우 족적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립일인 9월 17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 군정에 의해 국군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史實은 눈을 갚는다고 해서 덮어질 수 없다. 우리는 36년 동안 일본에 의해 강점되었다가, 미국에 의해 해방되어 미 군정 치하에 있었다. 최근 고종황제의 아관파천을 아관망명으로 달리 불러야 한다는 학자들이 나오고 있는데, 국군의 기원을 광복군이 아니라 고종황제에 의해 대한제국군이 창설된 날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더구나 10월 1일 국군의 날은 미 군정에 의해 국방경비대가 만들어진 날이 아니라, 국군이 패주하는 북한군을 추적하여 38선을 돌파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3군 사관학교 졸업식을 통합하려는 기도가 있었다. 국사에 바쁜 대통령이 3군 사관학교 졸업식에 매번 참석하기가 어렵다보니 편의적으로 나온 발상인데, 군의 반대가 심해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졸업식은 각군 총장 주재로 각각 치르고, 임관식은 계룡대에서 합동으로 치르도록 조정되었다. 합동임관식에 학부형 수천명이 밀려들어 대혼잡을 이루었다. 이리하여 이승만 대통령 이래 사관생도의 자존심을 높이던 졸업식은 사라졌다.

전두환 시절 줄무늬 해군 계급장이 알아보기 어렵다고 해서 육군과 같이 철제 계급장을 달게 하였다. 영국 해군을 모델로 하는 해군의 계급장은 세계적으로 거의 같다. 예비역 해군장병들은 아우성이었고, 노태우 시절에 원래대로 환원되었다. 전두환은 괜한 짓을 한 셈이다.

중국이 백제도 자국 역사라 주장한다고 한다. 고구려가 부여의 일족이 내려와 건국했고 백제는 고구려의 일족이 내려 왔으니 백제사는 중국 역사라는 것이다. 중국은 현재의 영토에서 일어난 역사는 모두 자국사라고 한다. 이것은 대영제국이 인도를 지배하였으니 인도에서 태어난 석가도 영국 역사라 하는 것과 같다. 영국은 이런 억지를 부리는 나라가 아니나, 중국은 19세기 아편전쟁의 패배로 당한 울분이 커서 힘이 커지니 이런 횡포를 부리려 한다. 시진핑이 등소평을 넘어 모택동과 같은 반열에 서고자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박정희의 10월 유신과 같은 어리석은 영구집권 기도이지만 중국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무모한 사람들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는 지정학적 숙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와 지정학은 국민교육의 알파요 오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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