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 Jang의 호주 이야기⑩] 이민제한 완화됐지만 기술 없으면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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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장영필 <아시아엔> 호주특파원] 1914년 당시, 국제사회적으로 큰 목소리를 내기에는 인구가 현저히 부족했음을 느낀 호주는 “부흥하든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든가”(populate or perish)라는 슬로건이 유행할 정도로 세계 1차대전의 참전 여부를 놓고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이는 호주인들로 하여금 민족주의를 생각하게 하는 시기와도 겹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대전이 발발하자 호주정부는 외계인(aliens)이라고 부르던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시드니 외곽 홀스워스(Holsworthy)에 있는 캠프로 강제 이주시킨다. 2차대전 당시에는 경찰이 이들을 합법적으로 감시하는 것을 허용하는 국가안보규정(National Security Regualtion(일명 aliens control)을 신설한다.

이러한 부당대우를 받아온 아시아계 이민자들과는 달리, 유럽계 이민자들은 적극적으로 ‘old Australian’이라고 불리던 영국계 호주인들과 적극적으로 사귀기 시작한다. 오늘날 호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나 클럽문화(pop culture)가 발달하게 된 주요 계기다. 특히 이들은 크리켓과 같은 운동경기를 통해 그들만의 사회를 형성해 나간다.

ig_75521945년 세계 2차대전이 끝났다. 대부분의 사회 인프라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유럽과 달리 본토 폭격을 받지 않은 호주로 대규모 이민 행렬이 이어진다. 1948년 통계에 따르면, 당시 신규 이민자 중 1위는 이탈리아, 2위 그리스, 3위 유고슬라비아인들이다.

이때부터 전쟁을 통해 인구 부족의 위험성을 느낀 호주 정부는 적극적인 이민수용 정책을 취한다. 한 정치학자는 “매년 7만명 이상을 꾸준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발표하면서 이민자 수용을 위해 호주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외홍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리 인구가 부족하다고 해서 아무나 받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호주는 1947년부터 정부와 이민자간에 일정 기간 호주 내 노동기간을 약정하는 ‘계약제 방식’의 이민법을 실시하였다. 1950년대부터 정부와의 근로계약기간이 끝나버린 이민자들이 계속 호주에 눌러앉으면서 일시적으로 노동시장이 포화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 이민자들이 전후 호주경제에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1948년에서 1965년 사이, 이민자의 26%가 제조업에 종사하였고, 이들 후손들이 꾸준히 증가해 호주의 인구 안정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전후 시절부터 정치적 입지 강화를 노리던 노동당이 지원하는 노조세력은 기존 호주인들과 신규 이민자들간의 갈등과 분쟁을 중재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 호주 수도 캔베라에서 최초로 ‘호주 시민권대회’(Australian Citizenship Cenvention)가 열렸다. 이때 정부와 주요 사회단체들은 좋은이웃운동(Good Neighbour Movement) 캠페인을 시작한다. 학교나 적십자 같은 단체들이 주도하던 이 운동은 신규 이민자들의 초기 정착과정에 크게 기여한다.

1965년에는 노동당에 의해 ‘인종간 차별금지 조항’이 제정된다. 1970년에는 신규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정부가 주도하는 영어교육이 실시된다. 이는 이민 문제가 전후 경제복구 차원을 넘어 호주의 미래에 경제적으로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호주는 적극적이면서도 선별적인 기술이민 정책을 취하는데, 1973년 신규 이민자들을 위해 호주정부 지원계획(Australian Assistance Plan)을 발표하고 동시에 해외 본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초청하기 위한 ‘가족재결함프로그램’(Family Reunion)을 발표한다.

1970년대 초반 정부가 백호주의 폐지를 결정한 이후, 경제가 꾸준히 발전하게 되자, 1979년에는 기술 이민자들에게 적용되는 ‘점수제 이민제도’(points)를 실시한다. 이는 사회발전에 걸맞는 새로운 기술을 지닌 이민자들부터 선별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마련된 정책이다.

img_74771981년 정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다문화기구’(Australian Institute of Multicultural Affairs)가 설립된다. 이때부터, 호주 사회 특히 전통적인 영국계 호주인들은 국가적 정체성(National Identity)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결국 이 아젠다는 1983년 연방총선거에서 주요 정치 이슈로 등장해 다문화를 옹호하는 밥호크(Bob Hawke)가 이끄는 노동당이 압승한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호주는 성공한 다문화 국가로 자리매김 한다.

현재 호주에는 128개국 출신의 이민자들이 살고 있다. 인구 중 5명 가운데 1명은 호주외 타국에서 출생한 이들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호주는 정보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호주 이민정책의 변화는 늘 새로운 기술이 이끄는 새로운 사회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ig_7474호주는 고급 기술을 가진 이들만 선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계 2차대전 이후, 호주 경제복구 시절을 벗어나 1970년대까지 호주는 천연자원에 의존하는 경제 호황을 누렸으나,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호주의 미래는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가진 이들에게 달려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향후 호주로 향하는 신규 이민자 중 국제적으로 통용가능한 기술을 보유한 이들 혹은 그런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이민 문호를 개방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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