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이해인 수녀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지혜학교 교장 역임]?이해인 수녀는 신 앞에서는 자기성찰과 자기 비움을, 이웃에 대해서는 가슴을 덥혀주는 시를 썼다.
길을 나선 나그네에게는 지친 몸을 쉴 곳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야 비용을 지불하고 쉴 곳이 있다지만 외진 곳에서는 몸 누일 곳이 그리 흔하지 않다. 아무데서나 노숙을 하는 것에 익숙한 나그네에게도 풍찬노숙을 피할 쉼터가 있다면 왜 마다하겠는가?
시인은 자신이 외진 곳의 빈 집이 되고 싶다고 한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 집에는 나그네뿐만 아니라 살인자나 도둑이 들어와 쉬어도 좋고 신이 머물다 가도 좋을 것이다. 또한 야생돌물이나 달빛 혹은 바람이 쉬어가도 좋은 곳이다.
빈 집은 자아를 해소한 ‘자기’를 상징한다. 그래서 빈 집을 어지럽히거나 더럽힐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빈 집이 되어주는 관계는 아름답다. 그것은 연인 간의 관계일수도 있고 이웃 간의 관계일수도 있으며 인간과 여타 생명체의 관계일수도 나아가 인간과 신의 관계일수도 있다. 모든 존재들이 서로에게 빈집이 될 때 진정한 만물일화(萬物一華)를 이루게 된다.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세상에 나 아닌 네가 없게 된다. 우주만상이 존재마다 빛나는 법화장엄의 세계가 된다.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 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 지어 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