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문정희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지혜학교 교장 역임] 보성 출신의 문정희는 “여성적인 것이 인간을 구원하리라”는 괴테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시인이다. 자궁암과 유방암으로 투병하다 그가 그토록 가깝게 여기던 자연으로 돌아갔다. 여성성이 생명을 낳고 세계에 희망을 만들어낸다, 라고 하는 화두로 여성으로서 그가 겪어온 슬픔과 상처, 고독과 절망을 끝내 희망으로 승화시킨 시인이다.
첫사랑! 말만 들어도 생각만 해도 가슴 한 켠에는 그리움이 일렁이고 다른 한 켠에는 은은한 통증이 느껴지는 단어다. 누군들 첫 사랑이 없었으랴! 시인이 말하는 “못 잊을 사람”은 시간적 순서에 입각한 처음 사랑이든 아니면 가장 설레었던 첫째 가는 사랑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둘 다 첫사랑이 되는 것이다.
그 첫사랑하고 오지를 가다가 뜻밖의 자연적 한계에 부딪혀 발이 묶일 때 그 사태를 “눈부신 고립”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두려움‘으로 볼 것인지는 못 잊을 임과의 관계의 정도가 결정할 것이다. 일상에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라도 불가항력적으로 한계령 근처에서 묶여, 그것을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하는 시인의 바람을 누구나 한 번 쯤은 꿈꾸었을 것이다. 그 “몸 둘 바를 모를” 축복 앞에서 어찌 저항을 하고 싶겠는가? 관습과 책임감과 이해관계를 넘어선 달달한 사랑 노래를 이 겨울에 쓰면 안 될까?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