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보리피리’ 시인 한하운의 ‘소록도 가는 길’

2문둥병도 무릅꿇은 한하운의 시심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시집 <꽃은 어디에서나 피고> ] 한센병 환우인 한하운 시인은 함경남도 함주 출생. 그는 한센병(나병)으로 사회적 냉대 속에서 망가져 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살다갔다. 한센병은 오늘날 거의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불치병으로 인식되었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의 한이 서린 섬이다. 일제는 소록도에 나병환자 수용소를 만들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나병환자들을 강제로 소록도에 가두었다. 또한 그들의 인권을 유린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병을 근절시킨다는 명목으로 남성 환자들에게 강제로 정관수술을 실시하였다.

시 ‘전라도 길’은 수용소로 가는 시적 화자의 고달픈 삶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가도 가도 숨 막히는 더위뿐”이고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은 시적 화자에게는 공간적인 길일뿐만 아니라 모질고 처참한 실재적 삶의 길이다.

인간의 죽음은 사회적 죽음에서 시작된다. 소통이 단절된 사회적 삶은 죽음으로의 길이다. 우리가 일을 하다가 퇴직을 하건 병이 들건 사회적으로 잊혀져가다가 가족들에게서마저 소통이 끊길 때, 인간은 자신의 육신 안에 갇혀서 기억마저 희미해지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은 그렇게 섬에 유폐되고 소통이 단절되고 잊혀져갔다.

그러나 시적 화자에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그는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의 상황을 견딜 수 있었다. 자신의 신체 일부가, 아무런 고통도 없이 맥없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경험하는 그에게 전라도 길, 소록도 길은 겉으로는 영벌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문둥이 사람’과 체온을 나누며 살 수 있음에 조그마한 위안을 느끼고 살아갔으리라.

전라도길

? ? ? ? ? ? ? ? ? ? ? ? ? ? ? ? ? ? ? ? ? -소록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을 넘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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