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80노모 빨리 죽으시라 기도한 친구에게 바치는 ‘기도’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1998년 가을, 간경화 합병증으로 요양 차 무주에서 담양으로 이사 갔다. 농가주택 평수 15평 정도 되는 집을 수리해서 살았는데 1년이 지나자 주인이 집을 팔겠다고 하였다. 4천만원을 달라고 하였다.
돈이 없어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친구가 우리 둘이서 반반씩 합하여 그 집을 사자고 하였다. 친구는 나를 위해서 그 집을 사게 된 것이다. 친구는 광주에서 계속 살았고 나는 시골집에서 그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만 식도암과 췌장암으로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다. 친구는 우리들 집터에 요양할 흙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카톨릭 신자인 친구가 집에 와서는 성당에 들러 싸가지 없는 기도를 하고 왔다고 말했다. .
80노모가 빨리 죽으라고 기도하고 왔다는 것이다. 외아들이 먼저 죽는 꼴을 어머니에게 차마 보일 수 없어 그랬다고 하였다. 할 말이 없어 나도 함께 기도하겠다고 하였다.
그가 세남매 남기고 죽어 묻히던 날 돌아오면서 아래 시를 썼다.
기 도
-박종양, 아브라함의 노래-
나가 그렇게 기도하였건만
울 엄니 빨리 죽으라고
자식 먼저 죽는 꼴
엄니가 겪지 않게 해달라고
하늘도 땅도 사람들도
상여 꽃처럼 검붉은 백일홍 꽃 이파리마저
싸가지 없는 놈이라 손가락질 하는 것도 상관치 않고
울 엄니 빨리 죽으라고
그리 깊이 기도하였건만
만약에 엄니가 빨리 죽지 않는다면
두 눈이라도 멀게 해달라고
극악한 암 덩어리 흡혈 앞에서
벌겋게 달궈진 불 판 위의 장어 토막처럼
온 몸을 지글지글 비비꼬며
오그라들 대로 오그라든 자식의 몸뚱아리를
울 엄니가 못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였건만
나가 그렇게 기도하였건만
울 엄니 귀라도 먹게 해달라고
자식의 췌장과 식도 그리고 뼛속에서
저절로 새어 나오는 비명 소리를
엄니가 듣지 못하게 해달라고
울 엄니 치매라도 걸려 멍한 눈과 귀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게
자식도 자신도 나고 죽음도
모두를 잊어버리게 하여 달라고
그러나 내 기도가 간절해질수록
엄니는 허리를 곧추 세워서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자식의 죽음을 읽어내었다
멀쩡한 두 눈과 두 귀로는
자식의 몸부림과 신음 소리를 다 받아내는 것도 모자라
한 땀 한 땀 자신의 피와 혼으로
자식의 수의를 만들어 입히고선
엄니 품에서 자식을 편히 보내는 결기를 보였다
당신의 손주들 염려 말라고
신은 내 기도를 그렇게 이루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