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재기발랄’에서 ‘삶의 고통으로’···황인숙 ‘강가에서’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황인숙은 서울 출생으로 초기에는 가볍고 재기 발랄한 시를 주로 썼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삶의 무거움과 고통을 노래하는 시를 주로 쓴다.
2004년 여름 홍수로 전남 곡성군 압록강이 넘실대던 날, 때마침 가지고 갔던 시집에서 황인숙의 시 ‘강가에서’를 읽고 팔짝팔짝 뛰면서, 눈물을 찔끔찔끔 거리며, 요절복통을 하고 읽었던 생각이 난다.
시는 고립된 개체들의 처절한 자화상 읊고 있지만 그 표현을 ‘강가에서’와 같이 한다는 것에 무한한 경의를 표했다.
시인은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처럼 공동체의 기본 단위인 가족마저도 소통이 단절되고 가족구성원끼리도 각자의 방언을 하는 세태를 어찌 그리도 잘 표현해 놓았는지…
자본주의는 개인을 철저하게 분열시켜 놓았고 상호 연관성 회로를 짓이겨 놓았다. 그래서 시인의 말대로, 자신의 고립된 실존을 극복하고 싶지만 그것을 그 누구에겐가 토로하는 것이 민폐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하기를 원하면서도 함께하면 서로가 상채기가 되는 것을 알기에, 각자가 자신의 艱難苦恨을 짊어져야만 하는 현실을 시인은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고 멀쩡한 듯이 말하고 있다.
덧붙여서 시인은 굳이 그런 분절되고 고립된 상태에서의 자신의 고통을 호소해야만 한다면 강에 가서 하라고 한다. 혹여 거기서 우리 모두가 서 있더라도 아는 체도 말자고 한다. 눈을 마주쳐 버리면 서로 뒤엉켜 혼란만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시인 황인숙씨를 한번 만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강가에서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