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서른 잔치 앞둔 그대, ‘선운사에서’ 봄맞이를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녹색대학 전 교수] 최영미 시인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잘 알려진 당대의 시인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호감을 갖는 데에는 몇 초도 안 걸린다고 한다. 사랑도 그렇게 긴 시간에 걸쳐서 시작되지는 않는 것 같다.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명료하게 알아차리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말이다.
‘會者定離’라고 사랑도 이별이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꽃이 지듯 사랑의 기억도 한 순간에 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진한 사랑이 지나간 후, 사랑의 기억은 오래 남아 우리 가슴을 저민다. 불교에서 말하는 8고(苦) 중에 애별리고(愛別離苦)라는 것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이 크고 길다는 뜻이다.
시 ‘선운사에서’는 꽃이 피고 지는 것과 연인과의 사랑과 이별을 대응시킨 작품이다. 세상사에서 어떤 것을 일구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듯이, 꽃 한 송이가 피는 데도 지난한 노동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간힘을 쓰며 피었던 꽃이 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시적 화자는 사랑의 기억도 그렇게 꽃이 지듯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한다. 사랑의 상흔도 빨리 아물었으면 하는 그 마음을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시 ‘선운사에서’의 그런 언어적 표현 뒤에는 시적 화자의 감춰진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기억이 비록 고통스럽다고 해도 잊고 싶지 않는 마음, 아니 잊지 않고자 하는 의지가 시적 화자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것으로 읽으면 시 ‘선운사에서’를 오독하는 것일까?
무릇 인간에게는 사랑도 아름답지만 이별 또한 아름답고 사랑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고통도 또한 아름다운 법이 아닌가?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 참이더군
영영 한 참이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