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50살 늦깎이 등단 마경덕의 ‘가방, 혹은 여자’엔 뭐가 담겨있을까?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마경덕은 전남 여수 출생으로 50살이 돼서야 등단하였다.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시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고, 또 많은 시인들의 시를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시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남성에게 가방은 주로 밥벌이나 실용적 목적을 위해 들고 다니는 생활 도구다. 반면에 대부분의 여성에게 가방은 자신의 분신이면서 이미지다. 가방은 마치 자기 그림자처럼 늘 삶을 함께 하는 동반자다. 그래서 여성은 기분에 따라, 상황과 조건에 따라 거기에 맞는 가방을 들고 다닌다. 남성들이 볼 때, 그러한 여성의 가방에 대한 태도는 이해하기 참 힘든 일이다.
여성의 가방에는 그들의 삶을 이루는 소재들과 삶의 이력이 들어있다. 여성들은 무엇이든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그 버릇은 어떤 특정한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일반적인 특성이다.
간혹 남성에게 여성의 가방 안에 들어있는 화장품은, 예쁘게 보이고자 하는 여성의 욕망으로 이해되어, 남성의 성애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의 가방 안에는 특별한 게 들어 있지 않다. 거기에는 영수증, 껌, 스타킹, 초콜렛, 책, 사진 등이 마구잡이로 들어 있다.
그래서 여성은 자신의 가방을 남성에게 공개하기 꺼린다. 특히나 여성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자기 가방이 공개된다면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가방 안의 것들은 자기 삶의 온갖 편린들이기 때문에, 그런 삶의 흔적을 남성에게 들키는 것이 달가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래 마경덕의 시 ‘가방, 혹은 여자’에서 여성의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엿볼 수가 있는데, 거기에는 ‘도장 찍힌 이혼서류’, ‘금간 거울’, ‘부릅뜬 남자의 눈알’, ‘뒤축 닳은 신발’. ‘십년 전에 가출한 아들’, ‘시어머니’ 그리고 ‘깨진 접시 조각’, ‘적금통장’, ‘잡다한 생각’이 들어 있다.
그것들은 그 여인의 우여곡절 많은 삶을 고스란히 내어보인다. 그러면서도 여인은 그것들, 심지어 시어머니와 깨어진 접시 조각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가방 안에 담고 살아간다. 시 ‘가방, 혹은 여자’는 현실 속의 많은 여성들의 삶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방, 혹은 여자
그녀는 무엇이든 가방에 넣는 버릇이 있다. 도장 찍힌 이혼서류, 금간 거울, 부릅뜬 남자의 눈알, 뒤축 닳은 신발. 십년 전에 가출한 아들마저 꼬깃꼬깃 가방에 구겨 넣는다. 언젠가는 시어머니가 가방에서 불쑥 튀어나와 해거름까지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녀의 취미는 접시 던지기, 지난 봄, 던지기에 열중한 나머지 벽을 향해 몸을 날린 적도 있었다. 틈만 나면 잔소리를 향해, 바람난 남자의 뻔뻔한 면상을 향해 신나게 접시를 날린다. 쨍그랑 와장창!
그녀의 일과는 깨진 접시 주워 담기. 뻑뻑한 지퍼를 열고 방금 깨뜨린 접시를 가방에 담는다. 맨손으로 접시조각을 밀어넣는 그녀는 허술한 쓰레기봉투를 믿지 않는다. 적금통장도 자식도 불안하다. 오직 가방만 믿는다.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으로 터질 듯 빵빵한 가방, 열리지 않는 저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