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이문재의 ‘오래된 기도’···”촛불 한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이문재 시인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이문재는 시사저널 기자(1989~2005), 문학동네 편집주간(1998~1999)을 거쳐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필자는 간이식수술, 심장판막수술, 뇌수술을 받으면서 서울아산병원에 약 9개월 간 입원해 있었다. 그 때 성경 로마서 8장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는 말씀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기도할 수 있는 힘마저 없을 때,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말할 수 없이 큰 위로가 되었다. 환자의 정신이 혼미하고 기력이 없어 기도할 만큼의 힘이 모아지지 않을 때 누군가의 기도는 절대로 무효가 아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에게 기도는 일상적인 행위여야 한다. 아래 시 ‘오래된 기도’에서 시인은, 본인이 깊게 기도하지 않더라도 눈만 감을 수 있고 두 손을 맞잡을 수 있다면 그것이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 말에 백 번 공감이 간다. 본인의 생각과 의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감사할 일이요 그것이 바로 기도가 아닐까?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고 멈춰 서서 노을을 바라보고 꽃 진 자리를 떠올리고 간난 아기와 눈을 맞추는 것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것, 기도이다.

기도는 이렇게 일상으로 녹아들어야 한다. 특별한 시간, 특별한 장소에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절에 가면 대웅전 벽에 십우도(十牛圖)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중에 마지막 열 번째 그림이 입전수수(入廛垂手, 손을 드리우고 세상에 나간다), 깨닫고 나서 술집과 시장으로 가는 것이다. 세속에서 하는 일이 기도가 된다는 뜻이다.

오래된 기도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 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어 마시기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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