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차옥혜 ‘성난 코끼리 모자’···저들의 초원을 빼앗은 자 누구?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차옥혜는 1945년 전주 출생으로 생명과 사랑, 상생과 평화를 노래한다. 인간과 자연이 공동체적인 운명임을 자각하고 생태적 평화라는 이상세계를 지향한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낚시하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산과 들과 강으로 쏘다니며 4년 반을 놀면서 간혹 낚시를 하였는데 소위 ‘손맛’이라는 것을 그 무렵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건너뛰고 1년 늦게 중학교에 진학하고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영산강 상류인 황룡강에서 투망으로 민물고기를 잡아 회를 쳐서 소주와 곁들여 먹었다. 그렇게 내 청춘은 물고기를 살육하는 시간으로 점철되었다.

30대 중반에 낚시와 투망질 그리고 사냥을 그만 두게 되는 극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어떤 영화에서 낚시로 물고기를 잡는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그 때 낚시 바늘을 삼킨 그 물고기가 바로 ‘나’와 동일시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낚시꾼의 손짓에 따라 낚시바늘이 온 목구멍을 찌르는 극도의 고통을 체험하는 물고기와 내가 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낚시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공기총으로 참새를 잡아 숯불에 구웠는데 집 식구들이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을 보고서 내가 한 짓, 내 안의 살생에 대한 충동으로 무모한 살생을 한 것을 자각하고서 깜짝 놀라 그 짓도 바로 그만두었다. 재미로 살생하는 짓을 그 후로는 하지 않게 되었다.

젊었을 때는 생선회를 아주 좋아해서 잘 먹었는데, 40대 후반에 횟집에서 아저씨가 날카롭게 벼린 칼로 물고기 살을 저미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때 내 살이 저며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회를 먹지 않는다.

생태위기 시대에 생태적 감수성은 꼭 필요한 덕목이 되었다. 먼저 생명체가 죽임을 당하며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세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들을 살리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나아가 생명을 살리고 생태계를 지키려는 실천적 행동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모든 행위(의식, 의지, 행동)의 바탕에는 생태적 감수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차옥혜의 시 ‘성난 코끼리 모자’에서 시인은, 생존의 터전을 빼앗긴 코끼리가 먹이를 찾아 해마다 도시로 나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코끼리의 터전을 빼앗은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인간은 코끼리를 위험동물로 체포하여 구금한다. 그러자 코끼리는 절규를 한다.

문명이라는 미명 하에 삶터를 빼앗긴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는 곳곳에서 심심찮게 들려온다.

세계가 원래부터 인간의 것이었다는 듯이 인간은 그들을 정죄하고 가두고 살해한다. 원래 세계에는 주인이 없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 대부분은 “세계의 주인은 하느님”이라고 말하였다. 하느님은 공유적 존재이지 개별적·분절적 존재가 아닌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길쌈할 때 하늘과 땅, 강과 산, 동물과 식물의 주인은 없었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 고유한 목적이 있었다. 누구도 어떤 것도 지배당하려고 태어난 것은 없다. 아니 非생명체마저도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

 

성난 코끼리 모자

사람들에게 살던 초원을 빼앗긴

인도의 엄마 코끼리와 아들 코끼리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 도시에 나타나

달리는 차를 쫓아가 들이받고

달아나는 사람을 밟아 죽이거나 다치게 하다가

생포되었다

붙잡힌 코끼리 모자가

긴 코를 하늘로 쳐들고

소리치며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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