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어느 주교의 묘비명 “변화는 나로부터!”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아래의 글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지하 묘지에 있는 영국 성공회 주교의 무덤 앞에 적혀 있는 묘비명(墓碑銘)이다. 아마 주교가 죽음을 앞두고 쓴 글을 그대로 묘비명에 적어 놓았지 않았나 싶다.
혁명이나 개혁은 일차적으로 너와 세계를 바꾸는 일이고, 성찰이나 수행은 나와 우리를 바꾸는 일이다. 젊었을 때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혁명이나 개혁을 꿈꾸지 않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기 정당성을 담보로 세계와 타인에게 변화를 강제하는 청춘의 패기는 나이기 들어가면서 그 범위와 영역이 줄어들게 되다가 마침내 늙어서는 가족으로 축소되고 마지막 죽음 앞에서는 자기 자신의 변화로 한정되어진다.
묘비명의 글을 쓴 사람은 성직자다. 성직자는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부터 변화를 시도한다. 자기의 행위(마음, 생각, 말, 행동)를 성찰하거나 관상하며 수도자의 길을 걷는다. 그런데 묘비명의 성직자가 영국 국교회(성공회: Englican Church)의 주교인 점으로 보아 영국 혁명기, 정치 사회의 변혁기를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신의 변화보다는 외부 세계의 변화를 더 먼저 꿈꾸지 않았을까?
자신이라도 변했더라면 어쩌면 가족과 이웃과, 국가와 세계도 변화시켰을 지도 모른다는 시적 화자의 이야기는 수도의 첫걸음이다. 건강한 모든 종교와 경전들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천하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주교의 묘비명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도 변화되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