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조선 중기 송순의 ‘호모 에코사이버스’를 위하여
전남 담양에 있는 면앙정 송순의 묘소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송순은 조선 중기 시가문학의 중심에 서있던 유학자다. “온 세상의 선비가 모두 송순의 문하로 모여들었다”(성수침), “하늘이 낸 完人”(이황)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송순의 인품이 뛰어났다.
송순의 인물됨을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송순의 팔순 잔치에 모인 제자들이 스승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송순을 가마에 태우고 면앙정 주변을 여러 바퀴 돌았다. 제자들은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백호 임제 등 당대 문인들을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었다. 훗날 임금이 그 소식을 듣고 왕도 누려보지 못한 호사를 누린 송순을 무척 부러워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이 자연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세 가지가 있다. 먼저 농업혁명 이전, 즉 신석기시대까지 인간은 자연 안에서 자연에 종속된 형태로 살았다. 그러나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산업문명시대까지 인간은 자연 밖에서, 자연을 지배 대상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 결과 세계는 생태계 파괴로 인한 생태위기를 맞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현재 인류는 자연 안과 밖을 넘나들며 살아야만 하는 생태문명을 요청 받게 되었다. 자연과 인간이 호혜적 상생 관계로 살아내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럴 때 일차적으로는 송순과 같은 안빈낙도(安貧樂道)적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인간의 의식의 진화가 절실히 요청된다. 그것은 생태위기시대, 후기 산업문명시대, 인간의 지능을 대신하는 인공지능 AI시대, 인간의 근육을 대신하는 로봇의 시대에 인간이 지혜로워지지 않으면 결국 자신이 만든 문명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있어서 정복이나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다. 자발적 가난만이 지구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송순이 쓴 시조 ‘십년을 경영하여’는 송순의 안빈낙도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조이면서 현대적 사상체계와 감각으로 보면 ‘생태 시’에 속한다. ‘달’, ‘나’, ‘청풍’ 그리고 ‘강산’이 초가삼간과 일체를 이루는 송순의 물아일체(物我一體)적 삶에서,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일방적 폭력성이나 인간의 자연지배주의적 관점을 도무지 찾아 볼 수가 없다. 또한 인간의 자기성찰을 통한 인류 의식의 공진화만이 인공 지능을 인간의 통제 하에 둘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십년(十年)을 경영(經營)하여 초려 삼간(草廬 三間) 지여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淸風) 한 칸 맡겨 두고
강산(江山)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