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오늘 어버이날···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심순덕은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카톨릭 신자로서 따뜻한 시를 많이 썼다. 시집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2002)가 있다.
‘어머니’, 하면 ‘헉’ 하고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세상 어머니의 삶은 대부분이 서러움이요 안타까움이요 길고 긴 기다림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향한 짝사랑으로 애가 타도 자식에게 서운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항상 당신 자리에서 자식을 기다려 준다. 누가 뭐래도 자식을 믿어주고 자식이 하는 일을 밀어준다.
김흥호 선생은 어머니는 삼무(三無) 즉 무아(無我)·무공( 無功)·무명(無名)이라 하였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자기가 없다. 오직 자식만 남고 자신은 자식으로 하나가 된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식을 돕기 위해 뭔가를 하되 함이 없다. 어머니는 이름이 없다. 그저 누구의 엄마로 불리며 살면서도 자기 이름이 남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는다. 돕기만 할뿐 공을 다투지 않고 낮은 자리에 처하니 물처럼 도에 가깝다(노자8장: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어머니는 지상의 하느님이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당신에게 아무리 이기적으로 굴어도 자식을 탓하지 않고 다 받아준다. 심지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자식들이 흘리는 눈물이, 어머니의 아프고 고난에 찬 일생을 안타까워해서가 아니라, 자식들 자신의 의지처 상실에서 기인한다 해도 서러워하거나 나무라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살아 돌아오실 수 있다면, 자식들이 자기들을 위해 흘리는 눈물마저 닦아 주실 분이 어머니다.
내게도 어머니는 서러움이요 그리움이요 만능해결사였다. 필자가 중환자실 산소호흡기 아래서도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것은 ‘내가 죽으면 어머니 계신 곳으로 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자식의 죽음마저 넘어서게 하는 분이다.
심순덕의 어머니도 그렇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의 그 어머니다.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인” 줄 알았을 때는 이미 어머니가 우리 곁에 안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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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 <좋은 생각>, 100인 시집 <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