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와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recht, Bertolt 1898~ 1956)는 독일 출생의 시인이자 극작가. 문학 활동을 하다가 나치에 쫓겨 오랫동안 망명 생활을 지속했다.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1980년대에 지식인으로 산 사람들 중에서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사람들은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특히 5.18항쟁에 참여하지 못 하거나 안 한 사람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은 것에 대해 괴로워하였다. 필자도 다르지 않았다.

광주민중항쟁 당시 나는 전남대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에 필자는 가족이 맞닥뜨린 큰 우환을 두고서 대학을 다닐지 말지를 결단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 결정을 하기 위해 1980년 5월 15일 산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르고 25일 산에서 내려와 보니 5.18항쟁이 진행 중이었다. 광주 진입은 불가능해 보였고 겁이 나서 광주로 들어가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브레히트도 꿈속에서 먼저 간 친구들이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라고 하는 말을 들고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고 말한다.

브레히트의 좌우명이 “진리는 구체적이다”였다. 시인이 서정시를 쓰지 못할 때는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다. 눈앞에서 계엄군의 대검에 임신한 여인의 배가 갈라지고 고등학생이 총에 맞아 죽어가는 상황에서 시인은 참여시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갇히지 않았다. 그는 그 슬픔을 ‘살림의 에너지’로 되살려 문학 전사로 살았다.

브레히트는 시 ‘망명기간에 관한 단상’에서 “벽에다 못을 박지 말자. 저고리는 의자 위에 걸쳐 놓자. 무엇 때문에 나흘씩이나 머무를 준비를 하느냐? 너는 내일이면 돌아갈 것이다”며 망명에 안주하게 될지도 모를 자신을 끊임없이 경계한다.

5.18의 마지막 수배자였던 윤한봉선생도 그랬다. 화물선을 타고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구두를 신고, 허리띠를 끄르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유사시에 언제나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산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굴욕감이 그를 단금질 하였다고 보인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한마당,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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